아침을 열며-작은 아버지
아침을 열며-작은 아버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02 18:3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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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작은 아버지

아버지는 일찌거니 돌아가셨다. 환갑을 못 지내고 돌아가셨지만 명징하게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후두암이 직접적 사인이었고 후두암의 원인은 싸구려 담배와 술이었다. 30년대 중반에 태어났으니 가난한 농군이었던 그가 애용한 담배와 술이란 싸구려 중에서도 싸구려인 것 또한 명백하다. 게다가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고 그렇게 자기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으면 귀신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평생을 좋은 날 없이 사는 게 불쌍해서 좀 더 살려 주고 싶어도 방법이 묘연할밖에 아버지에 비해 작은 아버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어찌어찌해서 명문대를 나운 이력으로 역시 명문대 약학과를 나온 동갑내기 부잣집 딸에게 장가를 들었다. 약국을 차렸고 연세가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두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아직도 작은 어머니는 조제를 한다. 아무래도 느리고 갑갑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연세 많으신 두 분을 생각해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약국을 두 번 이용한다면 한 번은 작은 어머니네 를 이용해 준다. 고마운 일이라고 두 분은 늘 말씀하신다. 한 동네서 살다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드리게 된다. 약국의 청소라든지 시장 보는 일 따위

요즘 부쩍 작은 어머니가 걱정을 내비친다. 전에는 내심을 꽁꽁 묻어두더니 이즘엔 한번 불만을 내비치면 말이 길어진다. “입맛 없다는 소리도 이젠 듣기에 넌더리가 나. 우짠다꼬 글키 묵고 싶은 게 많노. 죽을 때까지 내가 우째 견딜지 걱정이다. 해주면 묵다 안 함시로 이것 해라 저것 해라카이 참말로 환장하것다 내가” 옆에서 보는 나도 환장할 판인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시장에서 산 좋아하는 젓갈들은 달아서 못 먹겠다고 난리지, 작은 어머니가 담가준 건 짜서 못 먹겠다지, 담근 지 며칠 지난 김치는 시어서 못 먹겠고, 생김치는 비려서 못 먹겠고…

어쩌다 내가 해드린 게 맛있다고 해서 두 번째 로 해놓으면 또 안 먹어서 버린다. 그러려니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대략이라도 따져보니 입맛 타령이 심해진 게 작은 아버지가 관절병을 앓고 나서부터니까 거의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전에는 안 그랬는데, 반찬이 하나 있으면 하나로, 둘 있으면 그것으로 묵었는데 아프고부터는 입맛이 없어서 똑 죽것다 이걸 먹어봐도 안 되고 저걸 먹어봐도 안 되고 우째야 되것노?” 정말이지 저 소리를 귀에 못이 앉게 들었다. 작은 어머니가 걱정을 하면 할수록 나도 그 소리가 거슬린다. 불평불만도 전념이 되는지.

작은 어머니가 딱하다. 작은 아버지가 젊었을 때 하던 사업마다 실패했으니 작은 어머니가 약사이니 그나마 약국운영으로 먹고 산다. 하루 약 14시간의 약국 영업시간을 적당히 두 등분해서 낮 시간은 작은 어머니가 하고 새벽과 늦은 저녁 시간은 작은 아버지가 하는 것으로 자연히 정해져 돌아간다. 작은 어머니는 살림집에 있는 시간 틈틈이 필요한 요리를 하고 가사를 해치운다. 작은 아버지도 자잘한 가사를 하지만 요리는 일절하지 않는다. 사실 가사 중에서 요리가 가장 큰 일이다. 그게 오롯이 작은 어머니 몫이라니 불공평하지 않은가 다 그렇다고 해도 심하다.

애초 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됐을까. 작은 아버지가 젊었을 때 요리와 가사를 배웠어야 했다. 최소한 자기가 먹고 싶은 건 잔소리 필요 없이, 남의 손 거치지 않고 자기가 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당당한 인생이지 않을까? 그래야 우아하고 교양 있는 작은 어머니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욕? 당연히 나오지. 내 입에서도 인 공군 따발총에서 총알 튀듯 튀어나오는데. 며칠 전, 작은 어머니는 외쳤다. “지금이라도 안 늦다. 입맛이네마네 소리 하지 말고 입맛이 없으모 밥맛으로 달면 단맛으로 시모 신맛으로 묵으면 된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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