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판문점 만남으로 앞당겨지는 북핵 시간표
시론-판문점 만남으로 앞당겨지는 북핵 시간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03 16:39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
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판문점 만남으로 앞당겨지는 북핵 시간표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3번째 회담을 가졌다.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굳이 판문점까지 찾아와 번개팅을 갖자고 제안한 것이다. 북한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이번 만남은 철저히 트럼프의 계획과 행동에 따라 이루어졌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목적은 처음부터 김정은이었다. 삐거덕거리는 한미관계 정상화 등은 관심 밖이었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폭로한 한미정상간 전화통화에서 트럼프는 한국 방문에 대해 당초 부정적이었다.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8차 정상회담이 특별한 내용이 없었던 것을 보면, 트럼프는 결국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것이다.

둘째, 북한은 ‘통미봉남’을 추진하고 미국도 이를 묵인하고 있다. 지난 4월 김정은 위원장이 ‘오지랖’을 운운하더니, 이번 회담 직전에는 북한 외무성 국장이 “남조선 당국은 제 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 훈계했다. 2018년에는 리선근 조평통 위원장이 우리 재계대표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느냐고 호통 치더니만, 이번에는 김정은의 집사 김창선 서기실장이 우리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는 결례를 보였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 공식 참가하길 원했지만, 미국은 어떤 대안 제시도 없이 북한의 거부를 수용하였다.

셋째, 이번 회담의 승자는 단연 김정은 위원장이다. 50여 분간 회담은 하노이 결렬 직전의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한 톱다운 만남이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도발 지속을 원치 않고 있음을 뜻한다. 하노이 결렬 후 북한의 강수가 먹힌 것이다. 멀리 베트남까지 거창하게 기차를 타고 갔다가 망신당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북한 땅까지 밟았다. 한국 대통령을 바로 옆에 두고도 따돌린 채 미국 대통령과 단독 회담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연출했다.

넷째, 미국은 북핵문제를 조기 타결하려는 듯하다. 하노이 결렬 후 김정은은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며 회담에 집착하지 않는다 했지만, 정작 미국이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내년 2월 3일이면 아이오와 코커스가 열리면서 미국에서는 대선 레이스에 돌입한다. 대선 중에는 칼자루는 아닐지라도 북한이 선택권을 갖게 된다. 북한의 도발은 트럼프의 협상 실패를 뜻한다. 물론 트럼프는 강공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전쟁을 일으키면 군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유리하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은 포괄적 합의를 말하면서도 속도는 중요치 않다(No rush)고 강조하지만, 연말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는 것이다.

이제 다시 미북간 외교협상이 진행된다. 적어도 하노이의 ‘영변 플러스알파’를 시작점으로 하겠지만, 미국과 북한의 입장 차이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이 핵을 쉽게 포기하리라 보기 어렵고, 이를 성사시키는 유일한 압박카드인 대북제재는 한국 중국 러시아에서 빈틈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비핵화 픽션을 내보이며 실제로는 북핵을 묵인한 채 추가위협을 억제하는 선에서 봉합하려 한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북제재를 일부라도 해제하려면 유엔안보리와 미 의회를 거쳐야 하고, 그런 얼렁뚱땅 접근이 대선에서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에도 우리 정부는 턱없는 장밋빛 전망만을 늘어놓고 있다. 우리의 선택지는 분명하다. 대북제재는 북핵 폐기를 이끄는 가장 유효한 카드이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미북협상에 끼어들 여지는 없다. 넓은 오지랖 자랑 그만하고, 모쪼록 대북제재를 무너뜨려 스스로 제재대상이 되는 어리석음만은 피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