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김정호의 대동여지도김정호(金正浩 ?~1864) 황해도 출신 호는 고산자(古山子) 고종 때의 지리학자 전국을 두루 실지 답사하여 30년 만에 청구도를 제작 후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철종12(1861)년에 그리고 대동지지(大東地誌)와 같이 같은 해에 32권 15책을 집필했으며 이밖에 지구도(地球圖)도 제작 후에 이 지도의 제작이 국가의 기밀을 누설하는 행위라 하여 각판(刻板)은 불태웠고 투옥되어 옥사함 지도는 22겹으로 가로 접게되고 10리 방안(方眼)으로 거리를 측정하게 하여 상세한 부분은 거의 5만분의 1 지도와 비할 만하다.
후에 서대문 밖에서 그의 딸과 함께 지도를 판각하여 대원군(大院君)에게 올렸던바 각판은 몰수되었다. 대동여지도는 가로 20cm 세로30cm 지도 22첩으로 되어 전부 펼쳐 놓으면 가로 3.8m 세로6.7m의 한반도 지도가 된다. 현대 지도와 견주어도 정밀함이 뒤지지 않아 조선 최고의 지도로 불린다.
그들은 고생을 하다가 통탄을 품은 채 죽고 말았다. 일제는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조선 관청이 압수해 불태웠고 러일전쟁,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에 의해 쓰였으며 토지조사 사업의 자료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일제는 우리민족이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조선 정부의 무능함에서 찾게 하고 패배의식을 갖도록 몰아넣어 독립의지를 꺾으려 의도한 것이라고 분석된 바도 있다.
조선은 지도를 만드는 기술과 능력이 뛰어났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 동국대전도(1755) 팔도총도(1530)등 수준 높은 자도들이 대동여지도 이전에도 있었다. 또 교통사정이나 김정호의 경제형편을 짐작해 보았을 때 백두산을 8번 오르고 전국을 3번 돌았다는 건 믿기 어렵다.
어느 정도 현장 답사는 했겠지만 ”청구도“머리말에 나온 대로 자료를 연구하며 작업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흥선대원군이 김정호와 그의 딸을 옥에 가두고 대동여지도 목판을 압수해 불사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존된 대동여지도는 불 에탄 흔적이 없이 잘 보관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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