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10) ‘공공질서’
아침을 열며-시선-이쪽과 저쪽(10) ‘공공질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07 16: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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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대 外籍敎師-시선-이쪽과 저쪽(10) ‘공공질서’

주말에 몇몇 한국 지인들과 어울려 북경 교외의 샹샨(香山)으로 산행을 했다. 마침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아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무엇보다 멤버가 좋은 분들이라 가장 좋았다. 사장 변호사 교수 사진가 피디 등 직업도 다양했고 4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살아온 내력도 다 달랐다. 그런데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들 도전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전 세계를 삶의 무대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산 정상에서 둘러앉아 준비해온 간식과 음료를 나누며 많은 대화가 오고갔다. 대화의 상당 부분이 나라걱정, 특히 한국정치에 대한 걱정이었다. “바깥에 나와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한분이 웃으며 말했다.

예전 미국 보스턴에 잠시 살 때가 생각났다. 그때 고교 동창들을 만나러 뉴욕에 간 적이 있었다. 찻집에 둘러앉아 역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그때도 대화의 상당 부분이 나라걱정, 특히 한국정치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미국에 건너간 지 40년이 넘은 영주권자였는데 국내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친구도 열을 올리며 국내정치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했었다. 일행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여기 북경 사는 분들도 다 그래요” 하며 웃었다. 이 애국심에 제발 한국 정치인들의 응답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한국 최고의 고소득 직종이 국회의원이라는 그런 기사[평균소득(연봉) 국회의원이 1위…성형외과 의사·CEO보다 많아] 그런 것 말고)

그중 젊은 사장 한분은 “중국 친구들이 그런 한국 정치를 입에 올릴 때는 굉장히 속이 상해요. 얘네 들은 깊이 사귀다보면 은근히 한국이 옛날 자기네 속국이었다는 그런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강릉 단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때는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요. 실은 자기들도 별 의식 없이 지냈는데 한국이 그렇게 하니까 감히 자기네 걸 뺐어갔다고 성토도 하고, 그 일 이후 단오를 특별히 챙기기도 하고 그러더라니 까요… 중국 친구들한테 제가 직접 항의를 받기도 했었어요. 얘네 들도 한국이 잘나가는 건 싫다는 거죠. 그럴수록 한국정치가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그런 취지로 한참 열변을 토했다. 나는 늘 하듯이, “우리가 그런 중국에게 제대로 대접 받으려면 ‘질적인 고급국가’로 방향을 잡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어요. 특히 일본을 능가하는 고급국가…” 그렇게 응답했다.

그건 나의 확고한 소신이다. 그것 말고 우리에게 달리 무슨 길이 있겠는가. 어쩌고저쩌고 말들은 많지만 나는 삼성과 BTS가 좋은 모델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유럽과 일본을 능가하는 ‘세계 탑의 수준’ 그게 우리가 지향할 방향인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규모가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아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지난 60년간 우린 그게 가능하다는 걸 실제로 조금씩 보여줬다. 경제에서 민주주의에서 그리고 문화에서. 중국도 그런 건 두려워한다. 그래서 경계한다.
한드 “별그대”는 아주 이례적으로 중국 고위정치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게 조류독감으로 어려웠던 중국의 내수경제를 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다. 그것처럼 경제적 이윤창출로 이어지는 문화산업을 육성하라는 정치적 촉구였다고 한다. 대통령탄핵 같은 뉴스는 논평 없이 아주 교묘하게 포장해서 그 혼란상만을 보도한다고도 했다. 최근의 궁중사극 금지령도 한류의 영향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 분야 전문가 한분이 분석해줬다. 그리고 역시 최근의 일인 연길 축구단의 해체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

시골의 조그마한 도시인 연길의 구단이 1부 리그로 올라가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조선족이 자긍심을 갖게 되고 더욱이 한국인 감독을 영입하자 ‘세금미납’을 이유로 아예 구단을 해체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역시 한국에 대한 경계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오직 그런 ‘수준’만이 중국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예전의 속국’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즐거운 산행이 끝나고 귀로에 교외선 전철을 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데 타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먼저 우르르 올라탔다. 극심한 혼잡. 타기도 내리기도 힘들었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작은 아비규환이었다. 출구에서도 빠져나가는 데 한참 줄을 서야 했다. 내리는 사람들은 수백명인데 출구는 대여섯개 뿐이었다. 일행 중 한 원로 사장님이 말했다. “이런 걸 보면 좀 안심이 돼요. 중국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니들은 아직 멀었다’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허허허” 수요예측도 제대로 안 돼 있고 공공질서도 개판이고… 우리는 그래도 승차질서를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이 아닌가.

그래도 안심은 하지 말자. 중국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거리엔 “문명着裝” “문명질서” “문명생활의 북경인” 등 “문명”이라는 구호가 넘쳐나고 있다. 교양 내지 공공질서에 대한 이들 식의 강조다. 동네에 도착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아가씨가 무단횡단을 시도했다. (어디서나 보이는 흔한 광경이다.) 그런데 역시 어디에나 배치되어 있는 완장 찬 교통지도원이 ‘빨간신호가 안 보이느냐, 위험하지 않느냐’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훈계를 했다. 아가씨는 무안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파란신호를 기다렸다. 사람이란, 사회란,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 그러했듯이. 나의 이런 “21세기 신 계몽주의”는 그래서 아마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질적인 고급국가로 나아가기를 나는 오늘도 기대한다. 이곳 중국 땅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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