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논개 사당에 오죽(烏竹)을 심은 의인(義人)
도민칼럼-논개 사당에 오죽(烏竹)을 심은 의인(義人)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08 18:3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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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논개 사당에 오죽(烏竹)을 심은 의인(義人)

진주성 촉석루 서편 논개 사당에 대문 안의 오른쪽에 오죽대나무(烏竹 학명 Phyllostachys nigra)무리가 있고 논개 영정이 모셔진 사당마루 입구에 닫는다. 오죽대나무 무리는 논개의 호국정신을 더 높이, 더 위대하게, 진주성 7만 영혼의 호국정신을 대표하듯 당당한 오죽대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경외심마저 든다.

그런데 논개사당 내 오죽대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수수께끼로 전하여 필자는 지난날 촉석루와 가까워 살아 촉석루 주변을 청소를 했던 70대 김 씨 노인을 통해 들었던 내용 마저 잃어버렸다. 그러나 외부의 관심을 모았던 질문을 받고 지난 날 들었던 생각을 더듬었던 결과 연동 한의원 한 씨 원장이 일본인의 잔악한 행위와 탄압을 참고 견디지 못하여 나라 없는 백성들의 슬픔 한풀이로 심었다는 해묵은 이야기가 생각이 든다.

한 씨는 일본인 관리로부터 조센징 이란 호칭과 공출금, 전쟁 후원금 명목으로 재산을 강제로 빼앗긴 울분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관리인의 양해를 얻어 자신이 소유한 진양군 이반성면 평촌에 산재하는 오죽대나무를 직접 가져 와서 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진주성 정화로 철거된 이후 이런 이야기는 모두 묻혔다. 당시 촉석루는 6·25 한국전쟁 때 불타고 빈자리였으나 논개 사당만 남아 진주 사람들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던 때이라 오죽대나무를 심었던 심정마저 이해되고 그 시기가 촉석루를 재건립 할 무렵으로 생각이 든다.

몇 해 전에는 논개 사당에 오죽대나무를 심은 연동한의원 한 씨 원장을 수소문한 결과 진주시 옥봉동 연동한의원 한연동 원장임을 확인하였으나 이미 의원은 폐업되고 원장은 작고하였다. 한 원장의 옛 호적을 조사한 바 직계 손자 한기태씨를 찾게 된다. 한국에 몇 분밖에 없는 국제 다이아몬드 1급 감정사이고 강남동에 금은방 경영주였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 57회 졸업생으로 사제 간이라 한연동 원장의 유품 및 어릴 적 할아버지와 동행한 내용, 논개사당에 오죽대나무를 심게 된 경위를 세심하게 청취할 수가 있었다.

한연동 원장은 청주 한씨, 호는 삼산(三山). 이름은 한연동, 연동한의원장으로 진주시 옥봉동 남강둑 밑(현 시외버스입구)에 연동한의원과 당시 진양군 이반성면 평촌리 184번지에 역전한약방을 운영하였다. 평촌리 기차역 근처 산과 밭에 약초원 1700여 평을 재배하였고 약초밭 주변 숲에 오죽대나무를 귀하게 재배하였다.

그 이외 함안군 여앙면에 구리광산과 산 56여 정보에 숲이 좋아 숯 생산을 강요받아 숯 생산을 하였는데 숯값 대금을 반강제적으로 세금 및 후원금으로 공제 처리 당하였고 기회만 있으면 지서에 불러 충성을 강요받아 나라 없는 백성들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들러주며 손자를 통해 위로를 받는 듯하였다.

부친은 일본의 강요로 집을 뛰쳐 나갔다 그동안 가세가 기울고 삶에 시달리며 군생활로 할아버지가 심은 오죽대나무를 잃었다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요즘 가끔 논개 사당을 참배하며 오죽대나무가 할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필자가 오죽대나무의 심은 경과를 세상에 밝혀 할아버지의 뜻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사실 한 원장 같은 분이 논개 사당에 오죽대나무를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더 높게 강하게 표출시킨 사람이 곧 정신적 지도자이며 의인(義人)으로 존경하고 훈장 해야 됨은 우리들 몫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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