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출세 지상주의자 이사가 남긴 교훈
칼럼-출세 지상주의자 이사가 남긴 교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5 16:2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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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출세 지상주의자 이사가 남긴 교훈

이사(BC?~BC208)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사람으로 역사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빈털터리 지식인이었으나 진시황을 도와 최초의 통일 제국을 이룩하고 끝내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재상이 된, 말 그대로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다. 반면 그는 또 자신의 손으로 일군 통일제국을 자신의 손으로 망쳐 버린 역사의 죄인이기도 하다. 그는 통일 제국의 문물과 제도를 자신의 손으로 구석구석 정비한 제국의 뛰어난 설계자였으나 결국은 권력의 암투에서 밀려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휴가 나온 자식을 위한 잔치에 수천 개에 이르는 수레와 말이 몰릴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삼족이 멸족당하는 처절한 최후를 맞은 그의 인생역정은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때문에 그의 영욕과 부침은 2천 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평가를 낳았다.

그는 젊은 날 군의 말단 관리로 있을 때 ‘변소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접근하면 놀라고 두려워하는 반면, 곳간에 사는 쥐는 사람이나 동물을 전혀 겁내지 않은 것을 보고 사람의 잘나고 못난 것도 쥐와 같으니, 어떤 환경에 처했느냐에 달렸을 뿐이다’라는 깨달음을 얻고 순자(荀子)를 스승으로 모셔 제왕의 통치술을 배웠다. 학업을 마친 후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의 가신으로 있다가 진시황에게 통일 방안에 대해 유세하여 외국 출신으로서 군주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는 객경의 대우를 받았다. 그러던 중 정나라 첩자 정국(鄭國) 사건 때문에 외국 출신들을 모두 내 쫓으라는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지자 이사는 진나라 역사상 외국 출신의 인재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또 이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논지의 ‘간축객서’를 올려 진시황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글에서 이사는 “태산은 한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높은 것이고, 강과 바다는 자잘한 물줄기를 가리지 않았기에 그렇게 깊은 것입니다(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통일 제국의 첫 지상이 된 이후 이사는 통일 제국의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막강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렸다. 황제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 집권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현제라는 지방행정제도의 확립, 문자 통일,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대변되는 이데올로기의 확립, 진시황의 전국 순시 등 제국의 크고 작은 일들이 대부분 이사의 머리에서 나와 그의 손을 거쳐 결정되었다.

BC210년 지방 순시에 나섰던 진시황이 병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자 환관 조고는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하여 큰아들 부소 대신 작은아들 호해를 황제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몄고, 이사도 조고의 회유에 넘어가 정변의 주동자가 되었다. 큰 아들 부소의 측근들은 모두 이사와 조고에 의해 제거되었다. 어리석은 호해는 조고와 이사의 꼭두각시가 되어 폭정을 일삼았다. 진시황이 죽자 전국 각지에서 폭정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고, 이 와중에 조고는 호해를 철저하게 조종하며 이사를 권력의 중심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사는 글을 올려 조고의 악행을 고발했으나 오히려 조고의 모함에 걸려들어 모반죄로 허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죽었으며 삼족마저 멸족을 당하고 말았다. 이사는 변소에 살면서 여기저기 눈치나 보는 그런 쥐에서 곳간의 쥐로 변신하는 데는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쥐새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변소에 살면서 곡식을 먹는 그런 쥐였는지도 모른다. 보다 숭고한 가치관은 뒷전으로 한 채, 인간의 잘나고 못남을 그가 처한 물질적 상황으로만 재려 한 저급한 인생관에 사로잡혀 오로지 사사로운 부귀와 영화만을 위해 평생을 눈치 보며 살았던 서글픈 지식인 이사의 모습에서 오늘날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우리 지식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사의 비뚤어진 자기 성찰이 한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망쳤다는 엄연한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의 일그러진 형태에 너무도 너그럽다. 인기인이란 놈이 성폭행을 하고도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궤변을 하는 나쁜 놈이 있는가 하면, 권력의 최고수장을 검증하는 청문회를 보면서 또‘거짓말’이 들통 나는 것을 보고 허탈감을 씻을 수 없다. 거짓말쟁이를 감싸고도는 것이 권력이고 정치란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민초들은 정직한 지도자를 보고 싶어 한다. 구린내가 와 이리 독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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