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냉엄한 국제관계
아침을열며-냉엄한 국제관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5 16: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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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냉엄한 국제관계

월초에 필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과 ‘미국과 직접 거래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의 변치 않는 북조선 외교의 기본 노선’을 지적하며 이에 조심스럽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여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우연의 일치로 마치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아베 총리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리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을 한국에 수출 규제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에서는 ‘남한에 대한 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을 직접 상대해서 필요한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며 ‘북미 양측이 마주 앉아 양국 현안 문제를 논의하는 마당에 남한이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고, 끼어들어도 할 일도 없다’며 통미봉남의 원칙을 더욱 분명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달라는 돈이나 제때 내라’는 협박을 하는 듯 했다. 우리가 왜 이토록 처연한 처지에 빠졌는지 이제는 넋두리하기조차 지쳤다.

1945년 해방 직후 많은 사람들 입에 이런 동요가 회자되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며,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소.” 내 어릴 적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쫄망쫄망 따라 읊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 소리는 그저 아무 뜻 없이 참 한가로운 운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어느 듯 흘러 지난 지금에 이 동요는 무서운 경고음이자 실제 상황으로 울러 퍼지고 있다.

그저 흘러간 향수로 가볍게 읊조리는 빈 소리가 아니라, 목숨 걸고 심각하게 고뇌하여야 할 명령으로 울리고 있다. 이 마당에 미국의 태도는 어정쩡하고, 러시아는 불화가스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도 이 동요와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일까.
일본이 발표한 수출규제 품목은 우리 반도체 생산과 수출에 핵심적인 것으로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과 외교를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 경제구조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일본의 이런 결정과 발표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산 아래 빗소리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국제관계에서 어디 허튼 감정이 성공한 적이 있었는지를. 오로지 정확한 계산과 재빠른 칼날뿐이었던 것을. 특히 칼의 문화를 기본바탕으로 한 일본의 행태가 우리 역사에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분노의 죽창을 든 동학혁명의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를.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네가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너 그럴 줄 내 몰랐다.’식의 자기 억울함의 토로는 따지고 보면 스스로의 준비 없음과 무능함을 고백하는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던 호기(豪氣)는 ‘단기외채 상환요구’라는 칼날로 변하여 우리 경제의 목을 치면서 IMF의 비극에 일조했다.

힘없고, 꾀 없어 당한 일제강점기의 ‘인권유린’과 ‘강제징용’을 바로잡겠다는 정의로운 외침은 오히려 작금의 사태로 번지고 있다. 앞으로 이 기술의존문제를 정말 지혜롭게 풀어 나가지 않으면 IMF보다 더 혹독한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언론은 일본을 보고 과거사에 대한 독일을 본받으라고 그 당위성을 외친다. 하지만 일본은 독일이 아니며,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힘없이 외치는 정의의 목소리는 다만 빈 하늘 비껴가는 메아리일 뿐이다.

전후의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골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차곡차곡 내적인 실력을 키워 나왔다. 예컨대 그동안 군사 경제 강국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대하는 아베수상의 행태들을 떠올려 보라. 나의 주변 사람들은 ‘어찌 저리 체신 머리 없이...낯간지럽게…’하며 쯧쯧 혀를 찼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소스라쳤고 또 두려웠다. 자국이 품은 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저렇게도 슬프고 치열하게 접근하는구나 하고. 저렇게 하여 벼른 칼끝으로 내목을 치겠구나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은 어떤 일본 소설 중 강자의 칼끝에 순한 양처럼 순종하여 목숨을 연명해 내어 기어코 그 강자를 꺾고야 마는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강대국 수준이다. 그렇다고 굳이 기죽을 필요는 없으나 낭만적 민족감정에만 기대고 있다가는 목이 천개 만개라도 모자란다. 당위적 규범과 정당한 외침이 정립되기 위해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힘과 실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비록 일본이 용은 아니라하더라도 우리와 비교하여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매우 많기에 우리에게 있어서 상대적 용은 될 수 있다. 용의 역린을 건드릴 때는 그 용의 목을 칠만한 충분한 힘과 지혜가 갖춰져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섣불리 하다가는 오히려 용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고 만다.
작은 간장 종지 속의 물은 내 마음대로 마셔버릴 수도, 쪼르륵 부어 내어 버릴 수도, 힘껏 던져 쏟아버릴 수도 있다. 나의 손바닥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한 바다의 조류와 흐름에는 적응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지 같은 물이라 하여서 같이 취급하려들다가는 금방 바닷물에 빠져 죽고 만다.
국내에서 통하는 방식이 국제관계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한 우물 안 개구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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