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굽이굽이 올라서,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칼럼-굽이굽이 올라서,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18 15: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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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굽이굽이 올라서,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단발령에 올라 금강산을 바라보니 신선의 세계가 저곳이었다. 땀을 채 닦기도 전, 앞에 펼쳐진 풍경은 눈을 아무리 깜박여 보아도 현실의 세상이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세상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 갈수 있는 이 시대에 지금은 우리가 유일하게 오를 수 없는 산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겸재 정선을 통해 이 산을 오를 수 있었다. 그림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고 사진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질 못하지만, 단발령망금강도를 보는 순간 금강산의 비경뿐만 아니라 그 흥분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나는 산이 아니라 선계(仙界)를 그려 놓은 줄 알았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영조 때 화원(畵員)으로 조선시대 화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우리나라 회화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산천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완성한 것일 것이다. 정선의 그림 <단발령망금강>을 보면 금강산은 눈앞에 보이지만 저 멀리 안개 속에 있었다. 신선이 사는 궁궐의 금 자물쇠를 연 듯 하고, 아름다운 허공에 부용꽃을 묶어놓은 듯 하다라 표현한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의 시가 금강산을 상상하게도 한다. 저 선계(仙界)에 들어가려면 필연적으로 운해(雲海)로 들어가야만 한다. 단발령은 금강산 유람 여정의 초입으로, 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처음으로 금강산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강산의 모습이 너무 황홀하여 사람마다 머리를 깎고 금강산의 승려가 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발령'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정선(鄭敾, 1676~1759), 비단에 담채, 32.2x24.4cm, 조선후기, 간송미술관
정선(鄭敾, 1676~1759), 비단에 담채, 32.2x24.4cm, 조선후기, 간송미술관

겸재도 단발령에서 첫 대면했던 금강산의 황홀한 경치와 감흥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풍광을 마주하면 시인은 시를 짓고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단발령 고갯마루에서 선비들이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의 윤곽만 간략히 그렸지만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하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혹은 보석함을 열어 놓은 듯 신비롭고 장엄하며, 하단에 위치한 단발령은 붓을 누여 찍은 미점을 중첩하여 토산의 울창한 숲을 옮겨 놓아 금강산의 위압감에 맞서듯이 중엄하다. 화면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이어지는 사선의 하단에 경물들을 집중 배치하고 나머지는 시원한 여백으로 처리했다. 구름과 안개로 끊어져 보이긴 하지만 금강산과 단발령이 안정감과 변화감을 동시에 추구했다. 단발령과 금강산을 가르는 운무는 속세와 선계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금강산을 더욱 신비롭고 장엄하게 보이게 하는 주요한 장치가 되었다. 바위의 알몸을 내세운 금강산의 위압감에 인간은 맞서려 하면서도 그 속에 조화롭게 자리 잡으려 든다. 금강산은 인간의 작태를 말없이 바라보고, 인간 또한 금강산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이 그림은 대담한 생략과 강조 화법이 효과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파격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독특한 산수화다. 점차 올라가면서 산은 가파르고 하늘은 가까워져 급기야 최정상 비로봉에 이르자 하늘이 머리에 닿을 것 같다. 내리찍은 암봉의 필획들은 빠르고 예리하고 각지고 중첩되니, 봉우리마다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이렇게 절경을 빚어내는 솜씨는 조물주의 영역이 아니었고 화가의 영역이었다. 금강산을 마주한 애정 어린 선조들이 그리워진다. 단발령 위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는 그 사내들이 부러워졌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감탄이 입에서 되풀이 되는 지병이 있어 그 예전 누군가가 명명했을 단발령을 내가 처음 그 곳을 오른다면, 나는 아마도 이럴수령이라 이름 짓고 이럴수령망금강을 한번 그려 보았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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