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나 나무를 돌에 심어 자연을 연출하는 매력
야생화나 나무를 돌에 심어 자연을 연출하는 매력
  • 글 김봉철 ·사진 이용규기자
  • 승인 2012.06.0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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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경예술가 초석 전용수(全龍洙) 선생
▲ 초석 전용수 선생의 작업실에는 30여년간 만들어온 분경작품이 가득하다. 작업장을 둘러보고 있는 초석 선생(왼쪽)과  본사 황인태 회장(오른쪽).


우리나라 최고의 분경예술가인 초석 전용수 선생의 직업은 농기계생산을 하는 사람이다. 자연을 만드는 예술가의 직업치고는 뜻밖이다. 차디찬 기계를 만지는 것과 아름다운 자연을 연출하는 것이 별로 연결되지 않는데도 그는 그의 직업과 분경을 평생 같이 해 왔다. 분경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분경은 분재와 비교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분재는 수목(樹木)을 분(盆)에 심어 아름답게 가꾸어가며 생활 속에서 보고 즐기기 위한 원예기술의 한 분야이다. 대부분 나무를 위주로 하고 나무 한그루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반해 분경은 야생화나 나무를 돌에 심어 자연의 모습을 연출하여 생활속에서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나무와 풀이 어우러져 있고 여러 포기의 나무와 야생화를 심는 것이 분재와 차이가 난다. 분재가 정원의 나무한그루를 옮겨 놓은 거라면 분경은 정원자체를 옮겨놓은 것으로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 분재보다는 분경이 더 어렵고 자연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분경은 조화와 예술적 감각이 더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분재는 일반화 됐어도 아직 분경은 아직 생소하다. 그는 이런 생소한 분야를 혼자서 30년 이상 작업해 오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진주시 대곡면 농공단지내에 있는 대금산업은 조그마한 농기계생산공장이다. 그가 농기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당시 농기계 생산에서는 우리나라 최대기업인 대동공업사의 협력업체에 취직을 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또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런데 취직을 하면서 진주에 오게 되었고 농기계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회사의 본사는 부산에 있었는데 진주공장에 약 100여명의 직원이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요원으로 자신이 진주에 근무하게 됐다. 진주에 근무하게 되면서 진주가 너무 좋아 아예 정착하게 된 것. 지금도 그때의 인연으로 농기계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리 큰 재미는 없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취미로 시작한 분경이 이제 완숙의 경지에 올라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분경과 관련된 일에 보낸다고 한다.

그의 작업장에는 약 2000종의 분경이 전시돼 있다. 30년 동안 만든 분경이 그 정도의 숫자로 늘어났다. 분경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3~4개월이 걸린다. 그냥 화분에 야생화를 심는 것이 아니라 돌로 야생화나 나무를 심을 틀을 만들고 여기에 이끼를 심어 그 이끼에다가 야생화와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렇게 만든 분경하나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는 데는 약 4~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월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분경을 아직 하나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산청 약초축제와 진주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수차례 열었다. 사기를 원하는 관람객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 팔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가 만든 분경은 가격을 매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나하나가 작품이기 때문에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지는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보통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때로는 수억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그는 분경을 상업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는 것에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보다는 앞으로 전시관을 만들어 상설전시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1978년 진주 정착 35년간 농기계 만들면서 분경에 몰두


△분경이란 말이 생소하다. 무엇을 하는 것인가.
-화분이나 돌 자연석등에 나무나 풀을 함께 심어 자연상태로 우리 가까이 두게 연출하는 것이다. 화분을 이용해서 나무나 풀을 심는 사람도 있고 돌을 이용해서 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돌을 이용해서 분경을 하고 있다.
△분재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을 우리 가까이 있도록 하는 것은 같은데 분재는 대부분 한그루의 나무를 이용한다. 그러나 분경은 여러 개의 나무와 풀, 이끼등 다양한 것들을 함께 활용하여 만든다.
△주로 어떻게 작업하나.
-돌을 깍아서 이끼를 심을 기반을 마련한다. 돌을 깍는 것부터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이렇게 돌을 깍아서 기반을 만들면 여기에 이끼를 심는다. 이끼도 약 300여종이 있다. 어떤 이끼를 심어야 하는지를 결정해 이끼를 심어서 이 이끼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여기에다가 풀과 나무를 심는다. 그런데 풀과 나무는 대부분 씨를 이용해야 한다. 이끼가 워낙 얇기 때문에 자란 나무나 풀을 심으면 살지를 못한다. 그래서 씨를 심어서 여기서 싹이 트서 이끼와 함께 자라도록 해야 한다.

주로 돌을 이용해 분경하는 것이 특징

△보니까 다양한 돌들이 있는데 어떤 돌인가.
-단양돌과 지리산 돌, 화산재와 화강암등이 주 소재이다. 돌들도 다 특징이 있는데 강돌은 물을 잘 빨아 당기고 화석은 물에 담가 놓아야 한다. 화산재는 살균작용이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화산재를 이용하면 바이러스가 없다. 실내에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또 물을 많이 품고 있어서 수분조절이 잘 된다. 이끼가 자라는 데 적당하다.
△흙으로 하지 않고 이끼로만 키우나.
-그렇다. 나무나 풀을 흙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끼로만 키운다. 그래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일반 사람이 하면 이끼가 다 죽는다. 이 이끼가 잘 살아야 여기에 나무나 풀의 씨가 잘 자랄 수 있다.
△나무나 풀이 이끼에서 잘 자라나.
-그렇지 않다. 이것 역시 기술이 필요한데 그래도 나무나 풀이 이끼에서 자라는 게 쉽지는 않다. 예전에 중국 쪽으로 해서 백두산에 가서 구절초 한포기에 2만원씩 50포기를 사온 적이 있다. 이것으로 분경을 했더니 겨우 1포기 살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엄청 시간이 많이 걸리고 조심스러운 작업 같다.
-그렇다. 시간과의 싸움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분경하나 만드는데 3~4개월, 모습이 갖춰지는데 4~5년

△보통 분경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걸리나.
-돌 작업하는데만 3~4개월 걸리고 여기에 이끼를 심어서 싹이 트고 또 나무와 풀의 씨를 뿌려서 싹이 트서 자리를 잡고 모양이 갖춰지려면 보통 4~5년 정도 걸린다.
△초석 선생이 만든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얼마나 됐나.
-약 30년 된 것이 있다.
△어떻게 하다가 분경에 빠지게 됐나.
-그냥 좋아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확 빠지게 됐다. 분경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울릉도는 37번, 제주도는 36번 정도 갔다 왔다.

산청한방약초축제와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7차례 전시

△전시회는 하지 않나.
-산청 한방약초축제에 초대받아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2회~5회까지 출품을 했다. 또 진주 예술회관에서 7번 전시회를 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하지를 않는다.
△왜 그런가.
-희귀한 야생화가 있으면 관람객이 몰래 가져가 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야생화는 한포기에 수천만원 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전시회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서울에서 한국생약협회가 초대해서 작품준비를 하고 있다.
△생약협회가 왜 분경에 관심을 갔나.
-대부분의 야생화가 사실은 약초이다. 그래서 생약협회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분경을 배우려는 사람이 많이 있나.
-요즈음은 매니아 층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무턱대고 찾아 와서는 몇일씩 묵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엄청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마추어는 가르치기기 쉽지 않고 어느 정도의 전문가 수준이 된 사람은 가르쳐 준다.
△배우는 데 일정한 수준이 필요한가.
-그렇다. 분경은 하나의 예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돌을 만드는 데도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분경은 미술에 대한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후에야 작업이 가능하다. 돌 조각을 하는데도 6년 정도 걸려야 배울 수 있다.
△원래 고향이 어디인가.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대동공업사 협력회사 직원으로 진주에 와서 35년 보내

△그런데 진주는 어떻게 왔나.
-1978년에 진주에 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도 하고 동서기도 하다가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다. 그 회사가 대동공업사 협력회사였다. 부산에 있는 회사인데 공장이 진주에 있었다. 종업원이 약 100여명 되었는데 제가 인력관리를 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 관리하기 위해 진주로 파견되었다. 그때 진주에 처음 왔다. 그런데 와보니 너무 좋더라. 그래서 눌러앉았다. 지금까지 약 35년을 진주에 살았다.
△진주에 사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진주가 워낙 배타적이라 처음에는 엄청 어려웠다. 처음에는 술을 먹으러 가도 저 빼 놓고 저희들끼리만 가고 그러더라. 한 5년 지나니까 끼워주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지금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 쭉 그 회사를 다녔나.
-그런건 아니고 대동공업사가 옮겨가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을 시작했다. 농기계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IMF 이전까지는 비교적 잘 됐다. 그런데 IMF이후에 사업이 어려워졌다. 지금은 직원3~4명 두고 하고 있는데 별로 간섭을 하지 않는다. 직원들이 일은 다하고 저는 잠깐 잠깐 챙겨보는 정도이다. 적자는 나지 않는데 큰 수익도 나지 않는다. 분경에 미쳐 있으니까 사업은 잘 챙겨보지 않는다. 굶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금산업인데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농기계 부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만든 2천여 점의 분경 전시관을 만드는 게 꿈이다. 진주 근처에 좋은 곳에 전시관을 만들고 이들을 전시할 경우 나름대로 관광상품으로서 인기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제자 양성계획은 없나.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지만 장차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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