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공원(11)
아침을 열며-공원(1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22 16: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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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공원(11)

베이징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생활패턴 같은 것이 생겨났다. 오전에는 집필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가능하면 나가서 걷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베이징에는 공원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가본 것만 해도 원명원, 이화원, 천단공원, 지단공원, 일단공원, 향산공원, 올림픽(삼림)공원, 동승팔가교야공원, 래광영공원, 십찰해공원, 경산공원, 북해공원, 옥연담공원, 북경대관원, 용담공원, 원토성유지공원, 자죽원공원, 청년호공원, 류음공원, 조양공원, 장부공원 등이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광대한 황실 별궁도 있고, 소박한 동네공원도 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안에도 상당한 규모의 공원이 있다. 무척 예쁘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들을 엄청 좋아하는 편이다. 공원은 개인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존재 자체가 민주적이며, 아름다움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미학적이며, 이용자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이다.

도쿄에 살 때는 우에노공원, 이노카시라공원, 히비야공원, 리쿠기엔, 진구가이엔, 그리고 메이지진구를 비롯한 수많은 신사들, 등을 걸으며 즐겼었고,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 살 때는 공동묘지를 비롯해 사실상 도시 전체가 공원이었고, 보스턴에 살 때는 보스턴 커먼, 보스턴 퍼블릭 가든, 찰스강 강변 공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먼웰스 에비뉴 공원거리를 즐겼었다. 그런 산책이 심신의 건강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는 요즘, 세상 누구나가 다 아는 상식이 되어 있다. 공원은 그 가장 좋은 기반이 되는 것이니 그것이 도시의 크나큰 자산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양과 질이 도시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한 지표라고도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대표도시인 서울에도 공원은 많다. 여의도 반포 잠실 뚝섬 용산 상암 등지의 한강공원을 비롯해 고궁들, 효창공원, 파고다공원, 올림픽공원, 월드컵 평화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선유도공원, 서울숲… 등이 떠오른다. 나는 이 공원들도 엄청 사랑하는 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욕심을 내자면 이 공원들의 질적 수준을 좀 올렸으면 하는 게 있다.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한 그런 무언가가 좀 부족한 것이다. 고궁을 제외하면 “딱 봐도 한국!” 그런 건축물이나 시설물이 없다. 그런 ‘분위기’도 없다. 베이징처럼 꼭 100년 넘은 가게들이 거기 없어도 상관없다. 만들면 되는 것이다. 지금 만들어 100년이 지나면 그게 유산이 된다. 여의도 샛강공원도 베네치아처럼 만들면 된다. 거기 물이 흐르고 배를 띄우고 그 연변에 고색창연한 전통건축의 가게들이 즐비한 모습을 상상해보라. 외국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코스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돈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인드가 없는 게 문제인 것이다. 서울시의 막대한 예산을 공원사업에 투입하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 관광명소가 되면 그 원금은 회수되고도 남을 것이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한 노들섬 같은 것을 세계적인 고급 공원으로 (이를테면 쥬네브의 루소 섬처럼) 만들지 못한 것은 너무나 큰 아쉬움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스케일 하나만은 베이징에서 배울 게 있다고 나는 느꼈다. 어느 공원도 걸어보면 거의 반나절 코스다. 제대로 즐기려면 공원 하나에 하루는 필요하다. 올림픽 공원도 저쪽 끝이 잘 안 보일 정도로 까마득하다. 심지어 그 북쪽 끝은 삼림공원과 연결돼 있어 걷자면 하루로는 부족할 정도다. 도심 한복판의 북해공원과 십찰해 공원도 거대한 자금성의 한 세배는 될 것이다. 호수에 바다 해(海)자를 붙인 이들의 허풍은 귀엽게 봐줄만하다. 그만큼 넓다. 이 국제도시 한복판 자금성 바로 옆에 이만한 크기의 호수공원이 있다는 건 이들이 자랑해도 좋을 성싶다. 서울엔 그런 공간이 없지만 그 대신 베이징에는 없는 한강이 서울엔 있다. 그걸 꾸미면 베이징을 능가하는 명소가 될 수 있다.

서울시는 왜 그런 걸 하지 않는가. 600년 도읍의 역사도시가 아니던가. 조선시대야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들보다 더 크게 뭘 할 수는 없었다 쳐도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중국의 몇 배를 해도 상관없다. 하남에서 인천까지 아예 한강변 전체를 전통식 공원으로 조성해보면 어떨까. 나는 오늘 십찰해 공원에서 만났던 그 많은 서양 관광객들이 며칠 후 서울에 가서 그 공원을 걸으며 “와우 여기가 베이징보다 더 낫네!” 하는 그런 소리를 언젠가 한번 들어보고 싶다. 마인드를 키우자. 지금 당장이 어렵다면 조금씩 해서 100년 후에 그것을 완성하면 된다. 더디 가는 그런 철학은 저 스페인의 가우디에게 배우면 된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지역마다 테마가 다른, 끝도 없는 한강의 전통식 공원, 상상만 해도 가슴이 즐거워진다. 아니 두 다리가 이미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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