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시집 읽는 여름
아침을 열며-시집 읽는 여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23 15: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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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시집 읽는 여름

여기는 중북부지방이다. 올해는 비가 유난히 귀하다. 태풍 다나스가 온다기에 그것이 시원한 바람과 비를 함께 뿌려주기를 바랐다. 웬걸, 오다가 전라도쯤에서 소멸됐다나 어쨌대나. 환장한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지 쉽다. 시원한 바람과 비는 고사하고 후텁지근한 구름이 하늘을 꽉 막아서는 찜질방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내 주제에 하늘에 구멍을 낼 수도 없고 바람을 실어올 수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그래도 주제가 작가이니 시집을 읽는다. 찬물에 샤워를 하고 배를 깔고 누워 시집을 읽는 맛은 무더위에도 괜찮다.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부러운 게 없다.

게다가 김신용의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를 읽는 건 그야말로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적절하고 독특한 비유나 은유가 반짝이며 더위 따위야 저만큼 물러가게 해주었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마음에나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어 긴장감을 더해 온몸의 세포가 팽팽해졌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부 서민 시인에 의해, 서민의 정서로, 서민의 삶을 위해서 쓰인 시집이다. 우선 고맙고 귀하다. 반면에, 그 서민을 가르치려드는 통에 언짢은 것도 사실이었다. 곳곳에 드러난 시인의 현학이 우리 서민들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는 되면서도 뭔가 걸쩍지근했다.

특히 '비의 가시'라는 시에서 그런 현학이 두드러진다. 하필 시 안의 화자는 남성인 듯하고 그 상대(여자아이)는 여성이고 게다가 아이다. 여기서 화자는 상상력이 풍부해서 상식을 훨훨 비상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비를 ‘살아 있기 위해 무수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만져지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시 속의 여자아이는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지 어디로 내려요?” 라고 반문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다. 화자가 비는 몸속에도 내린다고 가르치는 대목에 이르면 몰랐던 나, 서민은 기분이 언짢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읽는 이를 긴장시키는 건 또 있다. 시 제목들의 어법이 너무 반복된다. ‘다시 전지를 하며’, ‘다시 저수에 대하여’, ‘씨 혹은 씨’, ‘혼밥 혹은 혼밥’, ‘말벌 또는 말벌 이야기’ 등 사람의 이름에 영 또는 강영이라는 식이 없듯 시도 그 시에 딱 맞는 제목이 딱 있을 것이다. 시인은 창작자이니 없으면 만들면 된다. 창작이란 문학마저도 창작되어질 때, 희열이 넘치지 않을까? 짧은 시어들에 길들여진 탓일까. 시를 읽는다기보다 잘 쓰인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짧은 시에 싫증이 나도 시가 단편소설로 돌아가는 것에는 쉽게 길들이기 뭔가 역시 걸쩍지근하다.

이래저래 긴장되고 감동되는 중에 ‘라면에 바친다’를 읽었다. 아, 라면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퍽 치는 시다. ‘언제였더라? 내가 라면을 처음 먹은 것은…얼큰한 해장국 같은 맛과 곱슬곱슬한 면발의 맛에 내가 매료된 것은…허기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 같았던 그 라면 한 봉지를 사들고, 돌아오는 때면 마치 꽃이 솜으로 된 목화씨처럼 포근하곤 했었다…얇은 양은 냄비 같은 방이 환하게 밝아지던, 라면…’이처럼 라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당장 슈퍼로 달려가 라면을 사야겠다. 얼큰한 국물이 끝내주는 것이면 더 좋고.

이제 ‘분수령1, 분수령2’에 이르면 이 시집도 시인도 나도 인생의 분수령에 이른다. ‘분수령을 넘는다 분수령을 어떻게 넘을까 생각하지 않아도 분수령을 넘게 되고 분수령을 넘는다는 생각없이도 언젠가는 분수령에 다다른다’ 분수령, 인생은 분수령의 연속은 아닐까? 넘어도 넘어도 또 코앞에 다가오는 인생의 분수령. 그래서 인생이 더 행복한지 더 불행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시인과 시가 있어 우리 인생은 위로받고 격려 받는다. 시인과 시에는 무조건 경의를 표하고 볼 일이다. 그래야 좋은 시를 마구마구 생산해주지 않겠는가. 김신용 시인, 마구마구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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