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억하며
기고-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억하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29 15: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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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자/국립산청호국원 현충과장
허윤자/국립산청호국원 현충과장-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억하며

올해는 6.25전쟁 69주년,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66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 초기 대한민국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두 달도 되지 않아 경상도 일부 지역과 부산 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을 북한군에게 점령당했다. 북한이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와 부산밖에 남지 않았던 위기에서 전쟁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비롯한 195만 유엔군과 90만 국군이 합심한 결과였다.

유엔은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유엔 회원국의 북한군 격퇴 참여를 결정하고 1950년 7월 7일 유엔군을 창설하여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미국의 맥아더 원수를 임명하고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6.25 참전 당시 유엔에서는 전투파병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총 22개국의 병력을 우리나라에 파병했으며, 유엔 참전용사들 중 4만여 명이 전사하고 11만 여명이 부상되거나 실종되었다. 우리 국군은 15만 명이 전사했으며, 13만 명이 실종, 7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1950년 11월 26부터 12월 11일까지 벌어진 장진호 전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중공군 7개 사단과 사투를 벌였고 중공군은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통 불바다가 되었으며 세계 3대 동계 전투 중 하나로 불리는 장진호 전투는 무려 10배가 넘는 12만 명의 중공군과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개마고원의 살인적인 추위, 두 개의 적과 치열하게 싸워야했으며 이 전투에서 6.25전쟁에 참여한 유엔군 195만 명 중 4만여 명이 전사했고 부상·실종자·포로까지 포함하면 무려 15만 여명에 달했다.

그들이 한국이라는 알지도 듣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처럼 희생을 치른 것은 오직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중국군, 북한군 대표가 휴전 조인문에 서명하여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으며, 6.25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고 동맹국간의 우호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 로 제정하여 매년 정부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에 국립산청호국원(원장 손순욱)에서도 제69주년 유엔군 참전의 날을 앞두고 호국원을 방문하는 학생과 장병 등을 대상으로 6.25전쟁 동영상 및 호국강연을 하고 있으며, 지난 24일에는 공군교육사령부 장병들을 대상으로 유엔참전국 및 참전용사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호국 골든벨 퀴즈를 통해 22개국 195만 유엔 참전용사를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국립산청호국원은 지난 25일부터 8월 한달 간 현충관 및 호국인의 쉼터 로비에 정전협정의 날 기념 특별 전시회와 방문자를 대상으로 유엔참전 군인에 대한 감사편지쓰기를 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함께 대한민국을 지킨 22개국 195만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며 ‘함께 지킨 대한민국,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제사회 우호협력 기반을 확대하고 참전국들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다짐하기 위해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우리 국민 모두는 이날을 기념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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