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아침을 열며-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30 14: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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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여름날 주말 밤엔 영화를 본다. 이번 주엔 ‘만남의 광장’을 봤다. 우선 너무너무 웃기다. 출연진들의 연기와 이야기 구성의 기발함이 더해 예측불허의 재미가 넘쳐 설랑 웃느라고 주제파악이 안 될 정도였다. 김종진 감독 작품으로 임창정과 박진희가 주연이고 임현식과 이대로와 이한위가 조연인데 이한위 연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강원도 총솔리 사람들과 북한의 윗말 사람들이 어찌어찌 땅굴을 파서 왕래를 하다가 남쪽의 누구는 북한으로 가서 “북조선 만세!”를 외쳐야만 하고 북한의 누구는 남한으로 귀순해서 “남조선 만세!”를 외쳐야만 했던 것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조연인 이한위와 덕용이가 새로 부임한 선생님(임창정)에게 아부하느라 달걀과 닭을 가지고 와서 몸에는 달걀이 좋다는 둥 닭이 좋다는 둥 하다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고 서로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이 먼저라고 다투며 선생님을 곤란에 빠뜨린다. 느닷없이 달걀과 닭이 등장하는지 의아하면서도 그 장면 자체가 너무 우스워 그냥 넘겼다가 며칠 지나서야 무릎을 쳤다. 그것은 바로 ‘만남의 광장’의 주제였던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깊은 소원인 평화통일이 되려면 남이 먼저냐 북이 먼저냐 로 따지자 고만 들면 소원으로 가는 길은 자꾸자꾸 멀어진다.

가장 웃기는 이야기 구성은 도입부분이 아닌가 싶다. 임창정이 서울 가서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꼭 성공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붙들고 서울에 도착한 순간, 딱 날치기를 당하고 오갈 데 없이 경찰서에 들어갔는데 누군가 ‘저쪽에 것들은 분명히 삼청교육대’로 갈 것이라는 말에 임창정이 경찰 몰래 슬그머니 그쪽에 가서 붙었다가 실제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에 입학을 했다. 웬걸, 복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삼청교육대 트럭을 타고 이동하다 낙오가 된다. 하필 새로 부임해 오는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던 청솔리 사람들은 이 교육대를 다니다 낙오된 화상을 맞이한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주워 다가 긴요한 주제를 살릴 수가 있는지. 웃다가 보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뭔가를 깨닫게 하는지 참으로 예술가들이란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여인이 남한의 남자와 결혼을 갈등하다가 결정하는 순간에 북한의 ‘어르신’으로 분한 탤런트 김수미에게 가서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물을 때 영화의 주제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김수미 왈 “탁 봐서 확 구역질 날 거 아니면 팍 결혼해 버리라우! 이래 재고 저래 재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야” 하고 말한다. 캬아~ 통일을 그렇게 팍, 해버리면 대박인데!

그랬다. ‘만남의 광장’주제는 우리의 소원, 통일이었던 것이다. 그냥 양쪽이 짠, 만나설랑 파바박, 해버리면 될랑가 말랑가…암튼 그 통일의 당위성을 그렇게 재미지게 풀어낸 영화다. 바야흐로 문재인정권 들어서면서 몇 십 년 동안 쉬쉬했던 종전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꿈만 같은 이야기들인가 말이다. 캬아! 종전이라니! 얘기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차제에 얘기만이 아니라 남과 북만이 아니라 관계국과도 구체적이고 다각적으로, 무엇보다 직선적으로 이 문제로 접근해서 민족의 대망인 평화통일로 결실을 맺어야 한다.

이렇게 장맛비가 내리는데 어디선가 에선 목숨을 건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너와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서울 강남역 8번 출구에 있는 20미터 높이의 관제탑에서 50일이 넘는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삼성해고자 김용희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이것이 문제다. 노동자의 관용과 이해가 먼저냐 대기업의 이해와 관용이 먼저냐 진짜 이것이 문제다. 실은, 결론은 명백하다. 대기업이 먼저다. 대기업이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이 백번 천번 먼저다. 왜? 대기업이 명백히 강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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