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일제가 책‧문서 55만권 소각했다
진주성-일제가 책‧문서 55만권 소각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7.31 16: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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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일제가 책‧문서 55만권 소각했다

일제는 을사보호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더니 사법권을 박탈했다. 1909년 7월 12일 사법권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통감부 고시 66호를 발표했다.
이 때 대한제국의 각종 사법기관과 감옥이 전 근대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1909년 10월 31일자로 폐하고 말았다.

1909년 8월 통감부령으로 각 군에 헌병 분견대를 설치해 무단통치를 시작했다.
한일합방 직후에는 헌병 사령관이 경무 총감이 되고 각 도의 헌병부장이 경찰 부장을 겸하였다.
각 시.군에는 헌병분견소를 두고 그 아래로 각 면소에는 출장소를 두었다.
1911년에는 헌병 기관을 종전의 2배인 953개소로 증가시키고 인원도 약 3배인 7749명으로 하고 헌병은 2019명 중에 조선인 1012명을 임명해 저들의 앞잡이로 활용했다.

경찰 5881명 중에 조선인 3493명을 임명했으나 대부분 순사보조원이 3131명. 순사는 181명. 통역이 58명. 간부급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제는 이들 친일 조직을 동원해 전국적으로 각종 책‧문서‧고서 등을 수집 압수하기 시작했다.
일제 헌병들과 경찰들은 뒤에서 조선인 순사 헌병들을 조정 지시하고 온갖 못된 짓은 하게 했으니 그러므로 일본인 보다 조선인이 더 악독했다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 온다.

전국 부호들과 사찰 문중이 보관중인 귀중본을 취합해 서울 남산에 쌓아 두고 55만권을 25일간 불태우고 국보급 문서들은 일본으로 반출했다.

일본 서지학자 후지모도 유키고 도야마(富山)교수는 고려와 조선의 고서 5만권 목록을 찾아 <일본 현존 조선본 연구>라는 책으로 발간할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책자가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탈취해 갔음을 알게 해 준다.

1923년 조선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구로이타 고문이 한국과 관계된 고문서 6만 6천 469매와 고기록 3576책 고지도 36매를 은폐 내지 소각했다는 사실을 <역사와 현대>에 기고해 확인해 주었다.

위의 내용과 통계는 관공서와 도서관에 보관된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며 개인이 소장하는 수 만권의 책과 문서는 조사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일본 당국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즉시 우리한테 돌려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일제의 만행을 규탄한다. 서울 남산에서 55만권을 소각하고 관공서와 도서관 소장본 6만권. 개인소장 수 만권을 즉시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한다. 도적질을 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물건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악독한 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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