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정들면 고향이지
도민칼럼-정들면 고향이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01 18:2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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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 시인·작가
강병선/시조 시인·작가-정들면 고향이지

베트남이나 태국,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뿐 아니라 중동지방이나 중국, 등 다국적 사람들이 진주에도 살고 있다. 한국어나 한글이 다른 나라 언어와 글보다 배우기 쉽고 편리하다지만, 이들은 우리말과 한글이 어렵다고 한다. 십년 이상 한국에 살았어도 우리말이 서투른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어린이들은 우리말, 우리글을 빨리 익힌다. 외국인이라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어린이들은 생김새만 다를 뿐 언어는 유창하며 우리나라 어린이와 발음도 똑같다.

내가 진주에 와서 산지가 벌써 40년이다. 참, 세월이 빠르다. 우리부부가 다른 데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동네서만 줄곧 살았다. 상대동과 하대동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사를 수없이 다녔다. 주민등록표를 떼어 보면 이사 내력이 서울과 수원을 거쳐 충남예산에서 단 일주일을 살았던 것도 기록되어 있고, 마산을 거쳐 진주에 자리 잡은 과정들이 한 장만으로는 모자라 두 장씩이나 따라 다닌다. 이후로는 잠시만이라도 진주를 벗어나서 단 일주일도 주민등록을 옮겨본 적이 없다.

내가 고향에서 태어나 살았던 3십년보다 진주에서 10년이나 더 많은 40년이란 세월을 살았는데도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억양을 고치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 모른다. 고향 순천에서 사용하던 말투가 그대로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고향이 어디냐? 진주에는 언제 왔느냐?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예, 내 고향은 전남 순천입니다.”라고 서슴없이 대답하곤 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정부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울 때마다, 호남지역은 찬밥신세였다. 서울·부산 마산, 창원, 포항, 울산, 등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는 도시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 했던 때라, 진주에도 호남지역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도 많이 살고 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더위를 식히는 장소라도 지나칠 때면 전라도 뜨기, 전라도 놈 등, 호남인을 비하하는 대화를 흔히 들었다. 요즘, 외국인을 차별하듯 전라도말을 쓰는 사람은 이방인 취급을 하는 지방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지역을 들먹거려 비하하는 소리는 왜 그렇게 불쾌 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육두문자를 직접 퍼붓는 것처럼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때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또다시 쿠데타 정부가 들어서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극도로 지역감정이 예민했다. 특히 영호남 지역갈등은 극에 달해, 말투만 들어봐도 전라도사람이라고 대번에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온 것처럼 서울이나 수도권지역이 고향이라며 그쪽에서 왔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많았다.

자기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누구는 빨갱이다, 하더라. 길을 물어도 안 가르쳐 준다, 하더라. 밥도 안 판다, 하더라. 자동차에 기름도 안 판다, 하더라. 이놈의 ‘더라더라’ 가 우리를 멍들게 했다. 유언비어를 만들어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안타까운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속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상대 1~2, 하대 1~2, 상평동, 초전동을 아울러 도동이라고 부른다. 진주를 떠나 서울이나 다른 지역을 갔을 때 어디 사느냐 물으면 “진주에서 삽니다” 진주에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도동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면단위에 사는 인구를 포함해, 36만 명쯤 사는 조그만 도시라고는 하지만, 시내를 나갈 일이라도 있을 때면 아는 사람을 하루에도 몇 명씩 만난다. 골목골목 어떤 건물이 있는가를 눈감고도 다 더듬을 수 있도록 눈에 익어 버렸다. 만약에 다른 데로 이사라도 가서 살게 된다면 남강과, 진주성 촉석루와, 선학산 등, 모두가 눈에 아롱거려 다시 돌아와야 할 것처럼 정이든 제 2의 고향진주다.

두 딸도 진주에서 태어나 결혼도 했고 사위와 딸의 직장도 이곳 진주에 있다. 고향순천에 이제는 내 소유의 땅 한 평도 없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금의환향하리라고 꿈을 키웠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강한 꿈과 소망을 접은 지가 오래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나의 꿈과 소망을, 이곳 제2의 고향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진주에서 펼쳐 나가리라. 어느 가수가 노래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맞는 말이다. 또 어느 누군가가 말했다. “고향이 따로 있나 아무 데나 사는 곳이 정이 들면 고향이지”…


2018년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영남문학회 회원 경남소설가협회 회원, 경남수필가협회 회원, (사)한국 시조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저서 ≪2018 수필, 농부가 뿌린 씨앗》《2019 시조, 세월》 《2019 장편소설, 마당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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