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일본’보다 먼저 ‘우리’를 보자
시론-‘일본’보다 먼저 ‘우리’를 보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11 14:5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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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일본’보다 먼저 ‘우리’를 보자

한일 간 ‘경제전쟁’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서 시작된 양국의 갈등은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져서 이제는 마주 달리는 기관차의 형국이 되었다. 대립과 충돌을 이끄는 힘의 선두에 각기의 정부가 서 있다. 이 새로운 형식의 전쟁이 서로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물러서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감정적 대응을 배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에 눈길을 두고 미래를 외면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싸움이든 이기는 이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당장은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사태의 핵심을 면밀히 분석하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며, 때로는 살을 주고 뼈를 얻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싸움을 이기는 방향으로 가져갈 자기절제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의 골목 싸움에도 붙이는 쪽이 있다면 말리는 쪽이 함께 있는데, 이번에는 그처럼 양쪽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세력도 없다. 어쩌면 한쪽 또는 양쪽이 극심한 피해를 자각할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우 ‘정치’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 이르러도 따로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는 뒷길이 남아 있는 것이 상례다. 그것은 양자의 관계를 되살릴 수 있는 윤활유이며 오래 축적되고 지속된 국제관계의 재료를 말한다. 곧 외형적으로는 ‘외교’요 내면적으로는 ‘문화’란 이름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한일관계의 외교채널은 이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문화의 역할에 기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필자가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생각은 아무리 정치적 국면이 어려워도 문화적 교통의 길이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가장 극단적인 경색의 국면에 처했을 때의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이 방정식이 유효하다고 생각한 터였다. 이번 일본의 무역 보복조치와 한국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필자는 십여 년을 계속해온 문화 행사에서 예정된 일본 작가 초청을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랜 경과 과정이 있으므로 그대로 진행해도 할 말이 없지 않겠으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비추어 이를 그대로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 난국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어차피 정부가 이 쟁투에 앞장 서 있고 온 국민이 이 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정부도 국민도 지금 선 자리와 갈 길을 지혜롭게 바라보면서 이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 부인에서 보이는 후안무치한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그러한 관성을 가진 상대방을 두고 우리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곧 우리 생각과 논리의 허점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우리의 주의주장이 밖으로는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안으로는 국민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의 자성론(自省論)과 냉소적 분위기가 현저히 살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일본에 대처하는 우리 내부의 결의가 한 방향으로 공감대를 이루지 않으면 대외적 파괴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중차대한 사안을 위해 국가 지도자가 구성원 모두에게 낮은 자세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비단 일본과의 문제에 앞서 정치의 진보를 도모하는 첫 번째 요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소 이 대목을 소홀히 하고 다른 정파와의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대통령과 정부여당부터 겸허한 마음으로 반성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의 전환은 결코 굴욕이 아니다. 정권적 정파적 이익이 아니라 민족적 국가적 대계를 위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보석도 그 속의 형질이 단단하지 않으면, 제 빛을 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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