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하바울 회장 “영남예술제로 전 지역민 함께 즐기는 축제 만들겠다”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하바울 회장 “영남예술제로 전 지역민 함께 즐기는 축제 만들겠다”
  • 정은숙 지역기자
  • 승인 2019.08.12 18:13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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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진주 영남예술제’ 성황리에 개최
과거 현재 미래 아우르는 화합의 축제로

내년에는 러시아 예술단 초청 공연 계획
대구·울산·창원 등 문화 인프라 구축

러시아어 전공 이후 성악 실용음악 전향
감동 느껴지는 풍부한 성량 목소리 매력
‘제1회 진주 영남예술제’가 지난 11일 진주혁신도시 롯데몰 앞 공연예술 특설무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제1회 진주 영남예술제’가 지난 11일 진주혁신도시 롯데몰 앞 공연예술 특설무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제1회 진주 영남예술제’가 지난 11일 오전 11시에 진주혁신도시 롯데몰 앞 공연예술 특설무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진주 영남예술제’는 1949년 최초로 시작되었던 ‘영남예술제’의 부활이다. ‘진주 영남예술제’는 진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에서 주최하고 주관했다. 제1부는 축하공연, 제2부는 시민 장기자랑, 제3부는 본 행사, 제4부 시상 및 경품으로 진행됐다. 제1회 진주 영남예술제는 유튜브 방송국으로 송출되기도 했다.

‘진주영남 예술제’를 기획하고 개최하기까지 모든 순서를 진두지휘 한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하바울(50) 회장을 만났다.

현재 하바울 대표는 ‘울 아카데미 실용음악학원 대표’, ‘국제 러시아어 한국어학원 대표’, ‘진주영남예술제협의회 회장’ 직을 맡고 있다. 하바울 대표는 경상대 러시아학을 전공하여 러시아의 정치 역사 지리 문화를 공부하고, 러시아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10년간 러시아어 학원을 운영 중이며 한국인 최초로 ‘쉬운 한국어(저자 하바울)’ 러시아어 교재를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하 대표는 이태리 정통 유학파 출신 이종은 교수에게서 성악을 사사받았고 실용음악으로 전향하여 재즈피아노, 보컬을 전공하고 현재 가수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유튜브에 ‘하바울’을 치면 ‘광야’를 부르는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가수 ‘하바울’의 ‘광야’를 듣는 순간, 이육사 시인의 ‘광야’가 이렇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였나?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급기야는 이육사 시인의 시를 찾아서 필사를 하고 다시 읽어보기까지 했다. 글로 읽는 것과 노래로 듣는 것은 감동이 다르다. 가수 ‘하바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깊은 감동과 함께 그녀의 풍부한 성량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뭔지 모를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백마 탄 초인’이 나타나 우리를 곧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줄 것 같은 희망과 기대와 감동을 갖게 한다.

‘진주 영남예술제’는 노래 ‘광야’와도 무관하지 않게 느낀다. ‘하바울’ 대표는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보면 그 길의 방향과 방법까지 보인다고 한다. 한반도의 산맥을 따라 휘달리는 듯한 그의 거침없는 목소리처럼, ‘진주 영남문화예술제’를 향한 그의 행보도 거침이 없다.

다음은 하바울 회장과의 일문일답.

-진주에는 또 다른 예술제도 있다. 굳이 ‘진주 영남예술제’를 부활시켜야 하나
▲진주 모 예술제가 그동안 전통 경연을 통해 우리의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점 지역민의 관심에서부터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고 단지 예술인들을 위한 예술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예술제는 본래 전 지역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남강유등축제가 부각되면서 예술제는 어느 때 보다 그 빛이 퇴색되어 보인다. 그래서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온 진주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영남예술제’의 부활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예술제의 명칭을 ‘진주 영남예술제’라고 붙였다. 어떤 의미를 담았나
▲첫째는 1949년에 시작되어 한 때 전성기를 누린 문화예술의 제전이었던 ‘영남예술제’를 부활한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영남’은 단순한 영·호남을 가르는 지역적인 명칭이 아니다. 이제 머지않아 남·북철도가 개통되면 러시아까지 한달음에 갈 수 있는 세계화로의 길이 좀 더 쉽게 열린다. ‘영남’은 ‘영원한 만남’, ‘세기의 만남’으로 세계가 문화예술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영남예술제를 부활시키고 세계적인 예술제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한다면 ‘진주 영남예술제’를 뒷받침해 주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현재 나는 가수로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고 그 활동을 기반으로 각 도시마다 문화예술 활동을 연결할 수 있는 든든한 인재들로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다. 대구, 울산, 창원을 비롯해 부산에서도 나와 뜻을 같이 하고 나를 지지해 주는 많은 분들이 있다. 또 러시아에는 동생 하종혁이 공연 기획 연출자로 러시아 방송에도 자주 나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 러시아 예술단과도 충분히 교류가 가능하다.

-‘진주 영남예술제’는 어떤 파급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이번 예술제는 첫 회이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관객을 유치할 수 있고 ‘진주 영남예술제’는 진주혁신도시를 활성화 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혁신도시가 활성화되고 인구가 유입이 되면 상권 문화 100% 완성도 시기를 훨씬 앞당기게 된다. 진주혁신도시가 살면 진주시 전체 경제가 살아날 것이다.

-‘진주 영남예술제’의 로고가 궁금하다.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를 담았나

▲내가 영남예술제의 부활을 꿈꾸며 깊이 고민하고 발품을 팔며 애쓰는 것을 보고 감동한 지인이 스스로 로고를 만들어서 가지고 왔다.

로고의 검정바탕의 원형은 진주성을 의미한다. 진주성 누각은 고전적 과거를 나타내고 그 느낌을 기본으로 3색 회오리 원형의 그라데이션 효과와 함께 영문 이니셜이 감싸는 모티브는 즐겁고 화합된 현재를 포함한다. 또 이니셜 JYAF는 JINJU YOUNGNAM ART FESTIVAL의 첫 자음들의 결합으로 진취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발전 방향을 제시하며 미래를 나타낸다. 그리하여 ‘진주 영남예술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고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빛나는 예술제가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후원은 순조로웠나
▲현재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28개 기업이 후원을 했고 내가 발품을 팔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한 시민들이 5만원, 10만원 십시일반 끊임없이 후원을 해왔다.

-앞으로 ‘진주 영남예술제’를 어떻게 더 발전시키고 확장시킬 계획인가
▲올해는 사정상 러시아와 문화예술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러시아 예술단도 와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진주시내에서 소소하게 단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화 축제들을 ‘진주 영남예술제’ 안에 최대한 흡수해서 함께 움직이려고 계획하고 있다. 축제는 무엇보다 유동인구가 있어야 하지 싶어 서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볼 생각이다.

또한, ‘진주 영남예술제’는 대구, 울산, 창원, 부산에도 인프라를 구축해 가고 있다. 현재 각 지역 문화예술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고 ‘진주 영남예술제’와 연대해서 ‘예술제’를 이어가므로 각 도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각 도시의 특색을 부각시켜 영남지역의 통합 관광 상품 루트를 개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하바울’ 이름이 특이하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바울’은 하늘과 바다의 울타리라는 뜻이 있다. ‘바’는 또 인간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울’은 ‘다림’, ‘마음을 다스림’ 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곧 ‘인간의 마음을 밝고 평안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나는 무척이나 밝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다. 가수로서 도내 노래를 듣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밝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녀의 노래 ‘광야’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광야’는 정의송 작곡가가 그녀에게 특별히 준 곡이다. ‘하바울’은 정의송 작곡가를 ‘스승님’이라고 부른다.

서장대에서 박물관 방향으로 내려오면 탑이 하나 있다. 탑 뒷면에는 1949년 단기4282년 영남예술제 제1때 만든 창제 취지문이 적혀있다. 제1회 영남예술제는 1949년 개최된 이래 1950년, 1979년 10월 26일을 제외하고 매년 그 맥을 이어 온 국내 최대 최고의 예술제였다. 1959년 제10회 때부터 이름이 바뀌었고 1964년에서 1968년까지는 국가원 수가 개제식에 참석하는 최초의 예술제로 진주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그 탑이 지금은 마치 퇴역한 장교처럼 사람들의 관심밖에 밀려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탑 속의 글을 조금만 눈여겨보면 영남 예술제를 통해 얼마나 간절하게 예술 혼을 부르며 문화예술이 꽃피기를 염원했는지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뜻을 하 대표가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진주영남예술제’ 로고도 최초 영남예술제 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그 비문의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하늘과 땅이 있는 곳에 꽃이 피는 것 같이 인류의 역사가 있는 곳에 문화의 꽃이 피는 것은 아름다운 우주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문화의 또 한 번 그윽한 꽃이다. 예술이 없는 세기에는 향기와 참다운 인간 정신의 결실이 없는 것이다.…(중략)

기름지고 오오랜 땅 위에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나듯이 힘차고 참다운 마음 위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꽃피는 것이다. 포학의 모진 겨울에서 해방된 우리 계레의 목숨 위에 그 깊숙한 서라벌의 예술적 피는 바야흐로 꿈틀거리며 새로운 ‘백화난만’을 설계하고 있다.’

‘힘차고 참다운 마음’ 위에 피어나는 그 위대한 ‘백화난만’의 꿈을 ‘하바울 대표’가 다시 한 번 이어가고자 힘껏 일어섰다. 서라벌의 예술적 피가 바야흐로 다시 한 번 꿈틀거린다. 그 선두에 ‘하바울 대표’가 있다. 초인처럼 우뚝 서서 뚜벅뚜벅, 아니 ‘백마 탄 초인’처럼 말을 타고 갈기를 휘날리며 미래로 달리고 있는 듯도 하다.

‘진주 영남예술제’가 최초 ‘영남예술제’의 정신에 입각해서 그 맥을 이어 예술제 중의 예술제 ‘진주’같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정은숙 지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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