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양들의 침묵
아침을 열며-양들의 침묵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13 14:4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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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양들의 침묵

한여름 밤, 영화 ‘양들의 침묵을’ 봤다. 몇 십 년 전 새파랗던 시절에 보긴 했지만 또 보고 싶어 봤는데 과거에 봤던 감동과 긴장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팽팽한 긴장에 그야말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처음 영화를 봤을 때에도 아직 스토리도 완전히 따라가지 못했고 무엇보다 주제파악이 전혀 안 됐는데 이번에는 마음먹고 도전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흥미와 주제파악 양면에서 모두 매우 만족스럽다.

다른 얘기지만 하고 싶다. 지금 난생 처음으로 노트북으로 아들 카페에서 글쓰기작업을 하고 있다. 아들과 남편 모두에게 내 돈으로 노트북을 사서 선물했지만 정작 나는 별 필요도 없고 해서 그냥 사용하던 앉은뱅이 컴퓨터를 사용했다. 그런데 작업실이 너무 더운데 에어컨은 없어 찐만두가 되기 싫어 남편의 노트북을 사용한다. 편하고 좋다. 전국의 조부모, 부모 여러분들! 아들 손자 노트북 부지런히 빌려 쓰고 뺏어서라도 쓰시라, 너무 좋다.

본론 양들의 침묵으로 돌아가서 양들은 울기만 할 뿐 그 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타개하지 못한다. 그것이 양들의 아픈 운명이다. 우리의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양에 비유될 뿐 실제로 양은 아니다. 스스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종교도 만들고 학문도 양산하고 망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여자형사는 과연 양들이 울음을 그치고 평안한 속에서 침묵하게 만들 것 인가.

양들이 울음을 그치게 하려면 사람의 살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악랄한 괴물과 사람을 구하는 건 뒷전이고 언제나 돈에 눈이 먼 자들을 일시에 없애버려야 할 것인데 그녀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애초 없다. 가진 거라곤

휴머니즘밖에 없는데…양들의 비명을 멈추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밖에는 없는데. 결국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우리 양들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그 ‘소망’이며 그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전언일 것.

이 여자형사는 언제나 양들의 비명소리에 괴로워한다. 어린 날 양부모를 잃고 사촌 집에 거주하게 됐는데 양을 도살하는 집이다. 밤이면 양들의 비명소리에 잠못들다가 어느날 한마리 양이라도 구하겠다고 안고 그 집을 도망쳤다. 곧 붙잡히고 한마리 양마저 죽임을 당했다. 이제 그녀는 형사가 되었고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당해 마른 우물 속에 갇힌 여인을 구하면 양들의 비명이 멈출 것도 같아 더욱 임무에 충실하다. 과연 구할 것인가.

그녀는 우물에 갇힌 여인을 구하자면 인육을 먹는 살인의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지독한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사람을 구하는 게 최우선, 그녀는 두려움 속에 살인마 의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을 끝내 찾아 총격하고 우물에 갇힌 여인을 구한다.

그러나 감옥을 탈출한 또 다른 살인마 정신과의사가 유유히 그녀에게 안부를 전하고 양들이 활보하는 거리로 섞여들며 멀어진다. 그녀에게 들리던 양들의 비명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후 ‘한니발’이라는 영화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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