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책보다 좋은 책벗
아침을 열며-책보다 좋은 책벗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18 15: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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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
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책보다 좋은 책벗

글을 쓴다는 것. 생각의 흐름을 기록하는 것. 새로운 내 생각을 담아내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부지런해야 가능하다. 고인 생각들을 담아내다보면 샘물에 새 물이 솟아나 고이듯 새로운 생각들이 퐁퐁 솟아나온다.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좋은 물은 좋은 대로.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에 복잡할 때는 하나하나 꺼내어서 실을 가지런하게 풀어본다. 엄청난 인내의 시간.

내 생각이 뒤지는데 글을 써서 누구에게 유익하리?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스스로 감정이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어디 한 구석 어느 한사람 시간낭비라 여기지 않고 ‘이럴 수도 있겠구나, 보길 잘했네’ 이런 느낌이 든다면 헛수고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다행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 여유와 호사를 누리는 일이다. 무료해서 책을 볼 때도 있지만 집안정리며 해야 하는 일거리를 내팽개치고 책에 몰입할 때 삐딱하긴 하지만 요즈음 그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특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이렇게 무더운데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지적재산을 펼쳐 놓은 수많은 책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참 감사한 일이다.

나의 지적 재산을 업그레이드 시켜야한다는 것을 알지만 게으름…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주목하니 말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일에 밀려난다. 하고 싶은 일은 돈이 하나도 되지 않는, 어찌 보면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오로지 나에게 혹은 소수에게 기쁨을 주는 일. 그러나 해야 할 일은 누군가가 정해준 것이 더 많다.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내가 정한 일이다. 과거에는 하고 싶은 일이었으나 이내 하기 싫어지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마음을 어찌 감당해야할까? 스스로 목표의 부정확 내지는 부재로 진단하였다. 다시 조용히 물어볼 일.

아이들이 어릴 때는 손에서 물이 마를 날이 없고 잠도 부족하여 요즘말로 독박육아로, 책 하나 보기 어렵다며 불평하였다. 책을 그다지 좋아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돌아보면 어릴 때 몸이 약했다. 산으로 들로 따라다니면서도 체력이 약해서 뒤쳐졌던 것 같다. 집에도 몇 권 있긴 했지만 책이라는 것은 학교 가서야 본격적으로 보았고 그전에는 동생 돌보거나 노는 게 일이었다.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자연을 많이 누린 셈이다. 하지만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하는 소심쟁이였고 오랜 시간에 걸친 믿음으로 친해지는 불안쟁이였고 지금도 그렇다. 오랜 친구들이 많아 다행이다. 10년 지기는 얼마 안 된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어린이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누린 것에 대해서는 작은 기쁨과 행복한 추억을 조금씩 꺼내볼 수 있으니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책들이나 청소년 책은 일반인들이 읽어도 재미있을 정도로 스토리도 탄탄하고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묘사도 잘 나타나있다. 더불어 어른 책도 읽게 된다. 너무 꼬아놓은 어려운 책은 아직 소화를 못시키고 있다. 쉬운 책만 편독하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책은 내가 외로울 때 나와 함께하여 나를 위로해주고 심심할 때 친구가 되어주며 허전함을 채워주기도 하고…사람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진하진 않지만, 그저 바라봐주는 담담한 친구 같다. 책보다 더 좋은 친구는 책벗들이다. 같은 책을 읽고는 모여 서로의 느낌들을 이야기 나누다보면 전 인류의 역사가 나오기도 하고 온 우주공간까지 날아갔다 오기도하는 폭넓은 시각이 생긴다.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작가의 삶, 비슷한 다른 작가의 책들을 함께 다루며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 어른들의 삶까지 들여다본다. 벗들의 느낌이 모두 다르므로 10명이면 10개의 차원을 오갈 수 있다.

책에는 우리가 현실에서 당하는 똑같은 문제 상황이 없다. 한 때는 갈등이 꼭 있어야하나 싶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문학에서 인물들 간의 다툼상황을 집어넣어서 그것들이 해결되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잘 살았다하더라’ 긍정적인 결말을 혹은 열린 결말을 나타낸다. 현실에서 트든 작든 해결할 문제들, 사건들 투성이다. 삶은 그에 대한 선택들 투성이다. 여러 당면 과제를 필자는 이런데 독자라면 어떻게 해결할지 건전하게 보여주는 간접교육인 것이다. 현자들이 자신의 해결책을 보여주며 ‘너라면 어떻게 할래?’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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