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칼이 아닌 따듯한 마음으로 눈을 치료
차가운 칼이 아닌 따듯한 마음으로 눈을 치료
  • 김봉철 기자
  • 승인 2012.06.07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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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박안과의원 박창열 원장

▲ 안과 개업 후 13년동안 2만회 정도 백내장 수술을 한 진주 박안과의원 박창열 원장. 그는 평생 자신이 가진 재능을 소외 계층들을 위해 기부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뭘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눈이나 눈빛을 관찰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눈은 사물을 바라보는 중요한 도구이면서도 사람의 마음까지도 나타낼 수 있는 신체의 소중한 일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병에 걸려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을 겪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눈이 우리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에 이상이 생기면 안과를 찾는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가면 '내 몸에 큰 이상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안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안과를 방문한 환자들은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들이 친절해서 기분이 좋고 인테리어도 병원같지 않고 카페 같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처음의 두려움이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환자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안과를 만들고 싶다는 진주 박안과의원 박창열 원장. 박 원장을 만나 그가 가진 따뜻한 눈빛의 이면을 들여다 보았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 일답.

-박안과로 유명한데 원장님 성함은 어떻게 되나
△이름은 박창열이고 65년생이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주로 경북에서 생활하셨는데 어떻게 진주로 오게 됐나
△군복무를 사천에서 하게 되면서 진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3년간의 군의관 생활 동안 진주에 올 기회가 많았는데 진주가 너무 좋더라.
대학시절을 보낸 대구나 대학 졸업 후 잠시 머물렀던 부산에 비해 진주가 훨씬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 정착하게 됐다.

-어떤점이 살기좋나?
△적당히 도시화 되어있고 적당히 농촌화 되어있어서 좋다. 대도시처럼 복잡하지는 않으면서 그렇다고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시골도 아니다.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한마디로 사람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그리고 진주처럼 채소도 많이 나고 해산물도 많이 나는 곳이 전국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과는 언제 개업했나
△1999년 1월에 개업했다. 횟수로는 13년 됐다.

-전공을 안과로 선택한 이유는
△안과의 가장 큰 매력은 결과가 바로 나온다는 점이다. 안과를 찾는 분들 중 대부분은 백내장 때문에 오시는데 수술 결과를 다음날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 일반 외과는 수술후 차도를 지켜봐야 하지만 안과는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보람을 느낄때가 많다.

-인상깊었던 수술 사례가 있나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수술을 하다보니 기억에 남는 분들이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으로는 5년전 쯤 합천 노인요양원에 봉사활동 갔을때 만났던 한 할머니가 떠오른다. 처음 할머니를 만났을때 할머니는 조그만 방에서 두 눈이 다 보이지 않는 상태로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자리에서 하루종일 앉아만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직업상 할머니에게 관심이 가 복지사들에게 할머니에 대해 물어봤다. 복지사들은 "그 할머니는 치매도 있을 뿐더러 눈이 안보여서 그런지 매우 성격이 괴팍하다"고 하더라. 눈 상태를 보려고 했는데 자신의 몸에 손도 못데게 했다. 기회를 엿보다 눈을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백내장이 심한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내장 말기였다. 수술하면 좋아질수도 있겠다 싶어 복지사들한테 할머니가 수술할 것을 권유했다.

-할머니 성격상 수술하기가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
△말도 마라. 수술하는데 엄청 힘들었다. 자신의 몸에 손도 못데게 하는 분을 수술하는게 쉬웠겠나. 그나마 할머니가 잘 따르던 복지사가 수십번 권유하고 설득해서 수술을 하게 됐다.

-수술은 잘 됐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원래 수술실에는 의사, 간호사 외에는 절대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워낙 백내장도 심하고 성격도 괴팍한지라 수술을 설득한 복지사를 따라 들어오게 했다. 그 복지사는 수술 내내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설명도 해주고 얘기도 나누면서 할머니 마음을 안심시켰다. 복지사의 공이 통했는지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할머니는 다음날 앞을 보시게 됐다.

-할머니가 좋아하셨겠다
△백내장 말기 상태에서 유추해볼 때 아마 그 할머니는 지난 5~10년 동안 앞을 못보셨을 것이다. 할머니가 처음부터 앞을 못보셨던 것이 아니라 백내장 때문에 못보셨던 건데 눈이 보이다가 안보이니까 엄청 답답하셨을 거다. 뒤에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성격이 괴팍해진 이유가 눈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할머니가 그렇게 인자하신 분인줄 몰랐다.(웃음)

-뿌듯하셨겠다
△물론이다. 신기하게도 그 할머니는 수술 후 치매까지 치료가 되셨다. 수술 다음날 앞이 보이고 난 후 할머니는 급하게 복지사들한테 돈을 주라고 하더란다. 복지사들이 돈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돈으로 물건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돈을 주자 할머니는 가게에 가서 이것 저것 물건을 골라서 사셨다고 한다. 얼마나 평소 앞을 보고 싶으셨으면 눈이 보이자 말자 가게로 달려가셨을까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그 후에 복지사들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할며니가 복지관에서 거동이 불편한 다른 노인분들을 돌보고 계신다고 한다. 솔직히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우스갯소리인데 할머니가 앞을 보신 후 복지사들이 제일 좋아했다는 후문이 있다. 백내장 수술 전 할머니가 얼마나 괴팍하셨으면 이런 후문들이 떠돌았겠나(웃음)

-개인적으로 감동 받았다. 또 다른 사례도 있나
△어느날 한 청년이 아버지를 업고 안과를 찾아왔다. 아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아버지가 눈이 안보이셔서 장애진단서를 발부 받기 위해 왔다"고 했다. 시력검사를 해보니 그분도 백내장이 매우 심해서 앞이 안보인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우선 수술 후 결과를 보고 장애 판정 합시다" 라고 했다.
그리고 수술을 했는데 잘됐다. 어르신이 앞을 보시게 됐다. 저는 처음에 어르신을 봤을 때 몸에도 장애가 있는 줄 알았다. 아들에게 업혀왔고 또 수술 전 안과에 올때도 휠체어를 타고 오셨다. 그리고 손이나 발을 자유스럽게 사용하시지 못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수술 후 어르신이 그렇게 건강한 분인 줄 몰랐다. 아마 앞이 안보이다 보니 몸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눈 건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그렇다. 물론 사람의 신체가 모두 중요하기는 하지만 눈은 매우 중요한 신체의 일부분이다. 위의 두 어르신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지만 백내장이 심해지면 앞이 안보이기 때문에 성격이나 건강하던 몸까지도 못쓰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로 충분히 완쾌될 수 있다.

-수술을 많이 하셨겠다
△개업 후 13년동안 2만회 정도 백내장 수술을 한것 같다. 중앙일보가 2006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에 보도한 자료를 보면 박안과 의원이 전국에서 6번째로 수술을 많이 한것으로 나타났다.

▲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고 말하는 박 원장은 "인테리어가 바로 서비스의 시작"이라며 안과 내부를 카페와 같이 편안하게 꾸며 놓았다. 특히 환자와 직원들에게 쾌적한 공기를 제공하기 위해 안과 전 층에 공기정화 시스템을 설치했다.

-의원 내부가 카페같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비용은 많이 들지만 2가지 이유에서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우선 환자들을 위해서다. 개인적으로 안과도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테리어가 바로 서비스의 시작이다. 일단 이곳은 아픈사람이 오는 곳이다. 나도 다른 병원에 가보지만 병원에 가게되면 진료과정에서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병원도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또 접수 후 대기 시간에 환자분들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이 집 같으면 편안하게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카페같다고 하는 환자분들이 계신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두 번째로는 직원들의 근무환경을 위해서이다. 저나 직원들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직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다. 환자는 한 두시간 있다 가시지만 직원들은 8시간 정도 근무해야 되는데 근무환경이 삭막해서야 일할맛이 나겠나.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한다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그러한 마음들이 환자분들에게 전해 질 것이다.
그리고 안과 전 층에 리쿠플레이트(공기정화 시스템)을 설치했다. 하루에 수많은 분들이 병원을 찾는데 거기서 발생하는 먼지가 상상 이상이다. 공기정화시스템을 설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설치 후 환자분들이나 직원들이 공기가 쾌적해 좋다고 하신다. 잘 설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모님이 내조를 잘 하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소문 그대로라고 보시면 된다.

-답이 너무 담백하신것 아닌가
△나는 아내보고 분명히 병원에 나오지 마라고 수차례 얘기 했는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나온다. 병원에 나와서 일하는 이유는 아내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웃음)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이신것 같다
△...

-경상도 남자면 자식들에게 무뚝뚝하시겠다
△그렇지는 않다. 말을 많이 하는편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즐긴다.

-실례가 안된다면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앞서 말한 자발적으로 알아서 병원에 잘 나오시는(?) 와이프랑 딸이 두명 있다. 큰 아이는 경상대 약대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하고 있고 17살인 작은 딸은 지난해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열심히 수능공부 중이다. 딸들이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공부를 잘하는것 같은데. 해외 유학을 보냈다거나 하는 특별한 교육 방법이 있나
△요즘에 보면 지식이 뛰어난 아이들은 많지만 가슴이 따뜻한 아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가슴이 따뜻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스무살 이전에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해외로 유학 보낸 적이 없다. 유능한 아이로 많들기 위해 외국에 유학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그 나이때 느껴야할 따뜻함을 상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도 따뜻함의 상실이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한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 두 딸들이 고맙고 대견스럽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섹소폰을 배우고 있다. 배운지 3년 정도 됐다. 아내는 플룻을 배우고 있는데 실력이 되면 소외된 어르신들을 위해 공연을 해드리고 싶다. 저와 아내가 함께 연주하면 괜찮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답게 마음은 따뜻하신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하는일이 계속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가족들이 건강하게 생활했으면 한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고 살고 싶다. 김봉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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