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종묘·제례(宗廟祭禮)
진주성-종묘·제례(宗廟祭禮)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22 17:2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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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종묘·제례(宗廟祭禮)

종묘의 정전(正殿)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남쪽의 신문(神門)으로 들어가 바라보아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다 연면적 6만5000평 종묘에서 행하는 제례(祭禮)를 보아야 조선시대 선비문화의 진수를 맛볼수 있다.

장엄하면서 유장하고 동작이 있고 예의의 정성이 담겨있다. 종묘에서는 우리가 많은 것을 배운다. 한번 돌아보는데 3시간쯤 소요된다. 그 분위기에 젖는다. 태조가 한양에 천도하고 도성을 건설할 때 제일 먼저 착수한 건축 중의 하나가 종묘이다. 도성 서편의 사직을 동쪽에 종묘를 짓는 제도에 따라 태조 3년(1394) 11월 초하룻날 터를 잡고 12월에 다지고 이듬해 2월에 공사를 시작 9월 25일에 준공하였다. 종묘가 완성되자 태조는 추존 4대의 신주를 개성에서 옮겨다 모셨다. 태조 7년 2월에 남쪽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었다.

태종 9년 3월에 가산(假山)을 크게 만들고 10년 5월에 동서상(東西廂)을 건립 그해 7월에 태조와 왕비의 신주를 봉안했다. 조선 개국이래 실제 첫입주가 시작됐다. 임진왜란때 불에 탔고 선조 41년(1608) 복구공사가 시작 광해군 즉위 5월에 준공 모두 19칸이 되었고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이것을 고종 7년(1870)에 대폭수리하였다. 태조 7년과 태종 9년에 석가산을 쌓거나 산을 만들거나 하였다고 한다.

산을 만들때의 흙은 연못에서 파낸 것으로 쌓았다. 석가산의 형상이 되었다.

정전은 19실로 나뉘었고 각실마다 문짝이 달려 칸이 막혀 있을 듯이 생각되나 막상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가면 19실이 막힘이 없이 한공간으로 넓게 열려있다. 이를 이실동당제(異室同堂制)라 부른다.

종묘에는 왕이 친히 세자와 종친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가서 제(祭)를 올리는 것이 기본이다. 정월, 4월, 7월, 10월에 지내는 것이 정시제이고 때에 따라 지내면 임시제라 하며 대제라고도 부른다.

대략 여섯가지 순서로 제를 드린다.
△신관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례 △망료 지금은 전주이씨 종략원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헌관이 찰의의 인도를 받아 판위로 나가 손을 씻고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신실 준소에서 서향하고 서서 감직한다. 이때 종묘제례악을 울린다.

이제 문화를 오늘에 반추하고 그 기반에서 내일로 나가는 든든한 행보를 마련하자는데 목표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옛것을 싹둑 자르고 옛 것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라고만 생각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충만한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준비하듯이 오늘의 충전을 위해 우리의 산지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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