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내 모습 가련하다, 팔팔조도(叭叭鳥圖)
칼럼-내 모습 가련하다, 팔팔조도(叭叭鳥圖)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8.22 17: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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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

박성식/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교수-내 모습 가련하다, 팔팔조도(叭叭鳥圖)


불운한 시대의 천재화가 팔대산인(八大山인). 왕족의 신분으로 나라가 망하는 투쟁 속에 그는 선(禪)을 택했고 붓(筆)을 잡았다. 선은 그의 울분을, 붓은 그의 광기를 대신한다. 세련되게 맑지 않고 화려해서 섬세하지도 않은 그의 그림은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표출이었다.

팔대산인(Badashanren, 八大山人 1626~1705)은 명(明) 왕조(王祖)가 망하고 청(淸)이 들어서자 심한 정신적인 혼란을 겪게 된다. 대문에 ‘벙어리(啞)’라는 글자만 붙여 놓고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말을 시키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짓으로 의사 표현만 할 뿐. 그저 웃고 소리 지르고 술 마시고 그림만 그릴 뿐 세상과의 소통을 스스로가 단절해 버렸다. 그는 결국 속세를 등지고 스님이 되어 버린다.

이름은 주탑(朱耷)이고 팔대산인은 법명이다. 낙관할 때 ‘울다’

라는 뜻의 ‘곡지(哭之)’ 또는 ‘웃다’라는 뜻의 ‘소지(笑之)’를 썼다. 인간의 가장 이중적인 감정 아니던가! 울분을 웃음으로 웃음을 울음으로 표현되는 감정만한 해학이 어디 있겠는가! 그의 그림은 마치 자신의 가슴속에 담긴 분노와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 이렇듯 그림은 그린 사람의 생애가 담겨져 있다. 사상과 지향점이 반영되어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하는 행위 자체가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말해준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가 묻어 있다. 손짓하나, 말 한마디 조차도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듯이 그림은 분명 작가의 일기와도 같은 표출인 것이다. 팔대산인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팔팔조도(叭叭鳥圖),  종이에 수묵, 31.8x27.9cm, 1694년, 개인소장


머리를 앞가슴에 푹 묻고 눈을 감아버린 새 한 마리. 외발로 거친 바위 위에 서있는 모습이 위태롭고 안쓰럽다. 이 <팔팔조도(叭叭鳥圖)>는 작가 자신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처지를 잘 표현한 그림이 어디 있을까! 새의 깃털을 발묵법(潑墨法)으로 처리하여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바위의 거친 갈필(葛筆)은 자신의 현실을 말해 주는 듯하다. 외로운 한 마리의 새가 큰 여백 속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평온한 듯 감은 눈은 현실에 대해 이미 초월해 버린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어쩌면 여백이 주는 안정감이 그 평온해 보이는 작가의 초월한 성정인줄도 모른다. 그 붓질 속에 그 사람의 처지가 담겨 있는 무서운 진실이다.

팔팔조도가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붓을 잡는 작가로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할 수 있는 좋은 화가가 되는 것일까. 다분히 본인의 생각이지만, 좋은 화가는 사회적 또는 개인적인 상처에 보편적인 의미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또는 감정적인 상처에 상상력을 펼쳐 자신의 의도를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림의 힘은 공감대이다.

들여다보지 못하는 존재의 허구가 있어도 익숙하게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기까지 그림이 버텨온 힘은 익숙한 아름다움이다. 비판과 시도, 미래의 예측이나 퇴폐 따위는 민중미술이나 쉬르레알리즘이 차지하고 있으면 그만이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겪어 왔지만,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해답을 주었던 기법이나 이념은 없다. 인위적이고 새로운 시도만이 현대를 살아가는 문화적 요소가 된다는 것을 뒤집어 보여 줄 수 있는 그림은 평범한 그림이었다. 때 묻지 않았거나 지극히도 평범하였던 생활들은 자연과의 친숙함으로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그림을 보면 긴장감 또는 경이감도 없는 것 같으나 자연과 인간이 가까워지려는 감각에 의해서 우리는 미적 세계에 빠져들게 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필연적 요소이며 자연에 대한 애정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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