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문화의 힘(2)
아침을 열며-문화의 힘(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1 16:0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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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문화의 힘(2)

얼마 전 중국당국이 이른바 ‘사극금지령’을 내렸을 때, 이곳에서 연예관련 사업을 하는 한 한국 지인이 그 배경을 설명해 줬다. ‘천편일률적인 우려먹기로는 발전이 없다. 다양한 방향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한국드라마 같은 작품을 만들도록 노력하라’는 메시지가 그 조치에 포함되어 있다는 취지였다. “그럼 그쪽 분야에서도 중국이 곧 한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겠네요” 하고 아마추어다운 말을 했더니, “그건 아마 당분간 쉽지 않을 겁니다. 얘네들은 통제사회기 때문에 한국같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발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러나 외국을 많이 접한 ‘링링허우’(00后: 이천년대 생)들이 성장해 주도세력이 되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죠” 하고 논평했다. 수긍.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BTS의 신곡 ‘페르소나’가 미국과 영국의 팝계를 또 석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사람의 한국인으로서 솔직히 자랑스러웠다. 동방의 한 조그만 나라가 세계의 정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이렇게 실제로 그게 가능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게 우리나라가 가야할 방향이다.

내가 거듭거듭 강조했던 ‘칼-돈-손-붓’의 그 붓이다. ‘문화의 힘’이다. 이런 분야에서는 우리도 세계를 석권할 수 있다. 수년 전 미국 보스턴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명, 중국인 두명, 일본인 두명, 이렇게 6명이 ‘하버드 아시안 철학자 모임’ 운운하며 어울려 논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중국인 여학생이 신바람이 나서 ‘별그대’를 이야기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니 그 재미있는 걸 아직 못 봤느냐”고 나를 책망하면서. 그건 이미 그녀의 것이었지 굳이 ‘한국’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을 휘어잡았던 저 ‘후유소나’(冬ソナ: 겨울연가)도 마찬가지였다. 문화는 그렇게 쉽게 국경을 뛰어넘는다. 국경이 아예 없다. 그쪽으로는 정말 인재도 많다. 그 수준도, 노래 춤 연기 기획 할 것 없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오늘도 한국의 매체들을 보면 연예계의 성추문과 마약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이건 아니지 않는가. 이런 건 이곳 중국에도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일부는 조롱도 한다. 부끄럽다. 내가 여기 베이징의 한 책상에서 이렇게 ‘품격’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안타까운 ‘문제적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정의로운 인기’와 ‘정의로운 수익’을 그들이 유념해줬으면 좋겠다. SM이나 YG나 JYP 같은 데서 연습생들에게 노래와 춤이나 외국어뿐만 아니라 나 같은 철학자를 불러 가치교육을 좀 맡겨준다면 좋겠다. 문화도 품격을 갖추지 않으면 그 인기는 결국 거품과 같다. 나는 오래오래 이런 한국문화의 건투를 보고 싶다. 품격 있는, 수준 높은, 그런 한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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