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부주의와 방심
아침을 열며-부주의와 방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3 16: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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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부주의와 방심


오래전 ‘학력고사’ 준비를 홀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을 이용해서 입시준비를 해야 하니 잠이 오는게 원수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싫었다. 쏟아지는 잠을 피할 수만 있다면 원수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잠 안 오게 하는 알약을 스무 알을 한꺼번에 먹고 곤혹을 치룬 적도 있었다. 누가 권한 것도 아닌데 공부할 때 입안에다 사탕을 넣고 굴리기 시작했다. 훨씬 잠이 덜 왔다. 거의 일 년 동안 그렇게 했다.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에 합격한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가 다 상해버렸다. 이만 상한 것도 아니고 잇몸까지 죄다 패여 버렸다. 게다가 잇몸이 욱신거리면 온 머리가 욱신거리고 양치질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안 해도 피가 나고 붓고, 진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치유는 됐지만 지금도 이 뿌리가 하얗게 드러나 있다. 지금은 스텐 재질로 된 이쑤시개로 매일 이 사이를 파주고 양치를 하는 등 나름 철저히 관리를 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딸이 치열교정에 들어갔다. 그게 장기간에 걸쳐 되는 것이다 보니 딸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매월 치료를 받는 날이면 녹초가 되어 집에 온다. 철사로 된 교정기를 점점 원하는 방향으로 더 조여야 하기 때문에 며칠간은 통증으로 잠도 못 잔다. 먹는 것은 씹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가려서 먹어야 한다. 몇 년 참아서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해방되어 평생 당당해 질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지 딸은 대견하게 잘 참는다. 감사!

이제 막바지 교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더 조여 주니까 아픔은 더 심해지는데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잇몸에 염증이 생긴 줄 몰랐던 것이다. 교정기가 이에 붙어있으니 잇몸에는 칫솔이 잘 닿지 않아 대충 닦아준 게 화근이었다. 잇몸이 욱신거리고 통증까지 와 며칠 전 치료때 담당의에게 딸이 잇몸에 대해 물었다. 그제야 의사는 잇몸 염증이라고 말해주며 피가 나더라도 잇몸까지 박박 문질러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딸은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정없이 잇몸을 닦았다. 피고름이 줄줄 흐르는 건 당연했는데 역한 냄새까지 물컹물컹 뱉어내야 했다. 잇몸이 붓고 이와의 사이가 들떠버렸다. 물론 따갑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따라왔다. 진통제와 소염제와 잇몸 강화제를 한꺼번에 먹고 아파 난리를 피우며 몇 시간이 지나자 딸이 말했다. “그래도 좀 시원해졌어. 근데 선생님도 이상해. 진작 잇몸 관리를 잘 해주라고 말해주셨어야지. 지금사 이게 뭐야”

한 집에 노인이 여러 명이면 서로 죽기를 바란다나 어쩐다나. 이와 잇몸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한 나도 너무 무심했다. 담당의사만 믿거나 한 것이다. 의사는 또 딸을 평소에 아픔도 잘 참고 총명하다고 칭찬만 하곤 그런 기본적이고 사소한 건 잘 하겠거니 한 것이다. 딸은 딸대로 잇몸이 불편해도 의사가 별 말 없으니 관리를 대충했던 것이겠고. 방심과 부주의, 범하기 쉬운 것들이다. 그런 만큼 큰일도 작은 부주의로 망칠 수 있다는 걸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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