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암’을 대하는 자세
건강칼럼- ‘암’을 대하는 자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5 15: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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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나/경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송하나/경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암’을 대하는 자세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암 환자들을 진료하려니 덩달아 우울해지지 않으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답하고는 한다.“전혀요. 오히려 그 분들께서 저에게 많은 걸 배우고 느끼게 해 주신답니다. 저 역시 밝은 에너지를 마구 전해 드리고 싶어요”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다. 누구나 이토록 두려운 질병인 암에 걸릴 수 있고, 결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암에 진단되었을 때 초기에 발견하여 극적으로 수술 및 항암 화학요법 등을 통해 완전히 관해(寬解)되신 분이 계시고, 반면에 이미 손쓰기 어려운 단계에서 진단되어 고식적 항암 화학요법을 받게 되는 분들도 계신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낙담하고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질병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치료를 받고 일상생활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몇 해전에, 30대 전이성 유방암 환자분께 처음으로 질병이 재발하여 손 쓸 단계를 넘어 섰음을 알려 드렸을 때의 반응이 아직도 선명하다.

“교수님, 저는 그럼 결국 죽게 되는 거죠? 얼마나 남았을까요?”그녀의 맑은 눈빛이 오히려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아마 1년 전후일 것 같아요”그렇게 2주가 지나 다음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내원했을 때, 그녀가 건넨 말은 너무나 의외였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울할 겨를이 없겠더라구요. 1분 1초라도 더 웃고 행복하게 지내야죠. 시간이 아깝잖아요. 교수님, 저 힘낼 거에요! 함께 최선을 다해 도와주세요”그 날 나는 그녀가 세상 누구보다 위대해 보였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혈액 종양내과 의사는 암환자들의 진단부터 임종까지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의사는 항암 치료가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에, 가장 효과가 있을만한 약을 고르는데 더욱 신중해 지고, 환자가 치료에 적합한지 다시 한번 더 살펴 보고 시작하게 된다.

암이 극복하기 어려운 질병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이전의 유방암 환자가 보여준대로 남은 내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 들이면 어떨까? 어떻게든 떨쳐 내려다보면 환자 스스로가 힘들어 주저앉을 수가 있고 항암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지게 된다.

어렵더라도 암에 대한 공포심을 누그러뜨리고, 항암치료에 최선을 다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한다면 내일이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환자의 곁에는 언제나 의사가 함께 할 것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런 자세로 암을 대한다면 ‘행복한 암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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