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버지의 죽마고우(竹馬故友) 교장 선생님
기고-아버지의 죽마고우(竹馬故友) 교장 선생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5 18: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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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아버지의 죽마고우(竹馬故友) 교장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1934년에 경남 합천군 쌍백면 평구리(돌인젓) 봉양재에서 입학하셨다. 쌍백 공립심상소학교 4회 졸업예정이었는데 학교개편에 따라 4회 졸업생 전원 5학년으로 편입하여 6년제로 1940년에 쌍백 공립심상소학교 제5회 졸업생이 되셨다. 그 후 1941년 4월1일 교명 쌍백 공립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 아버지께서 학교 다니실 때 정 방수 교장선생님과 단짝친구였다고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나는 6학년 때 배구선수생활을 했었다. 어느 여름날 학교운동장 서쪽 배구코트 장에서 잠간 쉬고 있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내 옆으로 오시더니 “너의 부친이 김재규 맞지? 부친은 잘 계시냐?” 하시면서 안부를 물어 오신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대답도 못하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있었다.

“내가 너의 부친과 한 책상에서 공부를 했었다. 학교 다닐 때 단짝친구였지 너의 부친은 다른 과목도 잘했지만 특히 산수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했지 나는 너의 부친보다 더 잘해보려고 열심히 했지만 너의 부친만큼은 못했다. 너의 부친은 인품도 훌륭했지만 머리도 아주 명석했지 집안사정으로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지만 공부를 했으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참 아까운 사람이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라 집에 와서 아버지께 오늘 낮에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자초지종을 전해 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참 선생님도 너한테 별말씀을 다 하셨구나”

학교 다닐 때 아버지께서 학교 육성회장 하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장 선생님과 친한 친구사이인줄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후에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는데, 어머님께서 주안상을 갔다 드리라고 부르셨다. 두 분이 무슨 대화를 하시는지 점잖은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 분 앞에 상을 조신하게 놓고 나오려는데 교장 선생님께서는 인자하시고 다정한 목소리로 “얘야 잘 먹을게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라”고 하셨다.

나는 왜 그렇게 부끄럼이 많았는지 “선생님!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도 못 드리고 바보같이 모기만한 소리로 “예”대답만 겨우 하고 나와 버렸다. 방학 때면 아버님과 교장선생님 가끔 만나셨어. 장기를 두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고 어찌나 두 분이 점잖으신지 서로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시고 대화를 나누시며 조금 드시는 약주를 드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쌍백초등학교에 교장선생님이 아버지의 죽마고우(竹馬故友)신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정방수 교장선생님께서는 1962년 2월 28일 쌍백초등학교에 제11대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해 오셨어 자신의 모교였기 때문인지 남달리 학교에 많은 애정을 표출하셨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다. 1963년도에는 학생들의 독서를 위해 도서관을 만드셨고 1966년도에는 학생들을 정서를 위해 맑고 깨끗한 연못을 만들어 횡횡 색색 잉어들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또 학생 수가 많아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다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1967년에는 동편4교실 신축하는데 심혈을 기울어 섰다고 하셨다.

1967년도에는 문교부 지정 체육과 연구학교를 지정을 받으셨고 1969년도는 교육부 지정 체육과 연구 발표 등 많은 업적을 남기시고 쌍백초등학교에 9년 6개월을 근무하셨다. 1972년 8월 30일 1학기 마치시고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는데 역대 교장선생님 중에서는 쌍백초등학교에 제일 오래 계셨다.

교장선생님이 전근가시는 곳 마다 아버지께서는 찾아 가셨어 즐거울 때나 외로울 때 항상 같이 하시는 모습이 참된 지란지교(芝蘭之交)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다정하게 지내셨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마지막근무 하셨던 곳은 김해 어느 학교에서 퇴임을 하시게 되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그때도 참석 하시고 부산우리 집에 오셔서 “교장선생님 오늘 퇴임을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못내 아쉬워하시며 한참동안 침묵(沈黙)을 하시고 계셨다.

교장선생님 퇴임 후에도 가끔 만나시는 것 같았다. 교장선생님께서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시며 살아 오셨는데 노후에 고생을 하신다고 많이 안타까워하시던 아버지!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렇게 가슴 아파 하시고 많이 서운해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혼자 말씀이 “그렇게 훌륭하고 참된 좋은 벗이였는데 이렇게 떠나는 구나” 하시며 허공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무척 쓸쓸해하시는 모습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의 가슴을 찡하게 했었다. 당신의 육신(肉身)이 고령(高齡)이신데도 혈육이나 다름없으신 죽마고우의 마지막 가시는 길 작별인사라도 하신다고 장례식장까지 다녀오셨던 아버지께서는 큰 상심으로 며칠 동안 몸져누워계셨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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