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신은 정보이다
아침을 열며-신은 정보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5 18:0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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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환/국학강사
김진환/국학강사-신은 정보이다

우리가 제사를 봉행할 때 주로 지방을 쓴다. 지방은 제사 때 종이로 모시는 신위를 말하고 신위는 신의 위치에 계신분이라는 뜻이다. 지방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는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죽으면 신의 자리에 앉게 된다. 죽어서 신이 된다는 말은 살아서도 그렇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선한 신인가 악한 신인가의 차이다. 선한 신은 선한 정보를 쓴 사람이고 악한 신은 악한 정보를 쓰다가 죽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신과 인간은 하나이다. 신이 나빠지면 사람도 나빠지고 사람이 좋아지면 신도 같이 좋아진다.

도대체 신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인류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해왔고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하게 했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서로의 답이 달랐기 때문에 수많은 싸움이 일어났고 지금도 이 문제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분쟁 요인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신이라 부른다. 우리의 문명이 아직 유아기에 있을 때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을 신이라고 불렀다. 목신, 터신, 산신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지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르는 태풍이나 번개같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천재지변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 뒤에는 신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많은 것을 알게 됨으로써 삶은 신의 영역에서 우리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이렇게 앎의 영역을 넓혀왔지만 동시에 우리가 서있는 작은 영역 저 너머에 얼마나 광막한 미지의 영역이 서 있는지 그것에 비해 우리의 앎이 얼마나 작은지를 또한 알게 되었다. 앎의 대부분은 사실 우리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우리의 지성이 자라면서 무지도 함께 자라온 것이다.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조차 하늘은 왜 저렇게 넓고 푸르며 밤하늘의 별은 왜 그렇게 많은지 무엇을 전하려고 그렇게 많은지, 나 자신은 누구이며 왜 여기 있는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할 때 우리는 여전히 신을 찾는다. 신은 우리 앎의 한계이다. 우리의 지성이 끝나는 곳이 신의 나라가 시작되는 곳이다. 우리는 이룰 수 없는 소망들을 모아 신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구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신을 찾는다. 목이 마를 때 옆에 우물을 두고 신을 찾지 않는다. 100일이 지나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사막 한가운데에서 목이 타들어 갈 때 오아시스조차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신을 찾는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때 우리는 신에게서 구한다. 이처럼 우리의 신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의 총합, 우리가 소원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의 총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우리와 더불어 우리의 욕구와 소망이 자라면서 함께 자라왔다. 신의 영역은 우리가 이루지 못한 소망의 크기에 비례한다.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할 때 그 욕구를 바탕으로 신의 나라는 유지된다. 신은 우리의 욕구와 소망 그리고 에고와 더불어 성장해왔다. 인간의 의식이 부족의 단위 일 때는 부족의 신이 생겨났고 그 단위가 민족과 국가가 되었을 때는 민족신, 국가 신으로 성장했다.

인간이 만든 신은 그 신을 만든 에고가 성장하면서 함께 성장하지만 신이 생겨날 때의 조건을 마치 지문처럼 기본속성으로 가지고 있다. 분노의 신은 여전히 분노하고, 질투하는 신은 여전히 질투한다. 민족의 신은 여전히 민족의 편에 서있다. 단지 더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노와 질투를 표현하고 더 교묘하게 자신의 편애를 실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신들은 미숙한 민족적 집단적 에고의 표현이다.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을 정당화해주는 우리 신들의 기본적인 성격이다.

어른의 덩치에 어린아이의 의식, 그것이 우리 신들의 모습이다. 정서적으로 미숙하며 자기중심적이며 스스로의 욕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유치함이 우리가 섬기는 신들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신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신이 우리를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신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은 바로 우리 집단의식의 표현이며 우리가 아는 만큼 알고 우리가 느끼는 만큼 느낀다. 신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신은 정보이다.

신은 어떤 집단 혹은 민족에게 선이라고 정의된 가치의 총합으로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정보이다. 신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 신이 작동하는 바탕이 우리의 몸과 뇌이고 우리가 만드는 크고 작은 조직이라면 그 신을 작동시키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집중된 의식의 에너지이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신이 우리를 사용하도록 우리의 몸과 뇌를 사용하도록 내어주고 그것을 작동시키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신의 이름으로 실현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자신의 욕구이다. 우리 자신의 안정에 대한 욕구와 지배에 대한 욕구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신들이 우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들을 부양하고 그 대가로서 우리가 신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이라는 정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죄의식과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무지, 즉 죽음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죽음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일 뿐이다. 기의순환을 이해하면 죽음은 삶이요 삶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신은 정보이다. 정보의 주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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