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라과디아 판사를 기억합시다
칼럼-라과디아 판사를 기억합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09 16: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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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라과디아 판사를 기억합시다

1947년 9월 21일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뉴욕 타임스〉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그는 때로는 화재 현장에 달려 나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날아다니는 등 모든 문제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타고난 투사, 그의 상대가 히틀러든 길가의 시정잡배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맞섰다. 뉴욕의 수많은 공공건물들만큼이나 많은 역할을 했던 이 작은 거인이 숨을 거두었다’이 기사가 나간 후, 뉴욕시는 모든 공공건물에 30일간 조기를 게양했다. 뉴욕에는 3개의 공항이 있다. 케네디 공항, 맥아더 공항 그리고 라과디아 공항이다. 사람들은 케네디나 맥아더는 잘 알지만 라과디아(1882~1947)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뉴욕시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장으로 꼽힌다. 1993년 미국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역사상 재임했던 역대 시장 중 ‘가장 위대한 시장’1위로 뽑히기도 했다. 1934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3번에 걸쳐 뉴욕시장을 역임했으며, 1947년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뉴욕시장으로 재직하던 동안에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간주되었던 뉴욕시는 최고의 도시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마피아와 싸워서 이긴 시장으로 또 히틀러와 싸운 시장으로 유명하다.

미 육군에서 밴드마스터로 일했던 아버지가 상관이 저지른 군납품 불량식품 사건에 휘말려 그가 젊었을 때 사망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비극은 그가 법관 시절 공직 부패척결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동기가 되었다. 아버지 사후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주재한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유대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귀국 후 뉴욕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910년 졸업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는 서민의 편에 서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민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 법률서비스와 변론을 맡으면서 이를 발판으로 그는 정치에 입문, 당시 가장 문제 지역 중 한 곳인 이스트 슬럼가에서 1916년 공화당 후보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연방하원의원직을 사임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미군장교로 임관하여 폭격기 조종사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으며 1차 대전 종전 후 귀국하여 1919년 선거에서 하원의원에 재선된다. 그는 여성 참정권 옹호, 미성년자 노동금지, 근로자들의 복지 입법 등에 앞장섰다. 그가 판사로 있던 1930년 어느 날 굶고 있는 손자를 위해 빵을 훔친 할머니의 재판을 하면서 법대로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고는 “이런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을 방치해온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하면서 모자를 벗어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넣은 뒤에 방청석으로부터 모금을 해 벌금을 뺀 남은 돈을 법정을 나서는 할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70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버릇이 없다”는 막말을 한 40대 버르장머리 없고 어른 아이도 알아보지 못하는 판사라 카는 놈이 국민적 울분을 자아내기도 했는가 하면, 법정에 출석한 60대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막말을 한 또 다른 40대 판사라 카는 놈이 견책 처분을 받은 사건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지금까지 구린내가 가시지를 않는다.

1930년대 뉴욕은 민주당의 아성인 도시였는데 공화당후보로 시장직에 도전하여 3수 끝에 당선된다. 그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마피아와 손잡고 있었던 부패한 경찰 조직도 개편하고, 마피아 조직 두목 찰스루치아노를 전격 체포하여 이탈리아로 추방시켰다. 시민들은 이 감동적인 판사를 세 번이나 뉴욕시장으로 선출했다. OECD가 ‘한눈에 보는 사회 2019’에 따르면 한국은 ‘중앙정부와 사법시스템, 군-경에 대한 신뢰도’에서 30%만 ‘정부를 신뢰한다.’고 응답하였고, 사법시스템 신뢰도는 26%, 군에 대한 신뢰도는 OECD회원국 가운데 꼴찌로 나타났다. 우리는 암기력이 좋아서 육법전서를 줄줄이 외면서도 눈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죽지 못해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감동을 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라과디아 판사와 같은 사람이 그립다. 법학을 전공한 장관 후보자의 임용을 놓고 그가 재직했던 대학과 그의 딸이 다녔던 학교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어 보기가 참으로 씁쓸할 따름이다. 구린내가 나지 않는 지도자가 그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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