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훈 이야기-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숨은 영웅
따뜻한 보훈 이야기-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숨은 영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0 15:0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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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태/경남서부보훈지청
권상태/경남서부보훈지청-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숨은 영웅

오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작전암호명-크로마이트작전(Operation Chromite))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잘 알다시피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이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1950년 9월,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북한군의 병참선과 배후를 공격하여 전세를 역전시킨 군사작전이다.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6월 6일, 미·영 연합군이 독일 치하에 있던 노르망디에 기습 상륙하여 파리를 탈환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

이러한 인천상륙작전은 노병과 선글라스로 연상되는 맥아더 장군의 전략 및 카투사 약 8600여명을 비롯한 한국군 1만3000여명을 포함,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보병사단 등 유엔군 7만5000여명이 투입되어 꺼져가던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의 불씨를 되살렸다.

여기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이끈 기억해야할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일 즈음하여 상기해보려 한다. 그 중 하나가 2016년 7월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통해 알려진 ‘켈로(KLO)부대’에 소속된 유격대원들이다. 켈로부대는 미국 극동군 사령부가 운용한 한국인 특수부대로 대부분 북한 출신의 비정규군으로 편성되어 인천상륙작전 당시 작전의 서막을 알리는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을 성공시키는 큰 활약을 하였다. 또한 이들은 인천상륙작전 외에도 화천발전소 탈환 작전 등 적진 한 가운데 투입되어 유격작전 및 첩보작전을 수행하는 등 많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군번을 받지 않은 비정규군으로 활약을 하다 보니 개개인의 참전 기록들이 없어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과 서훈을 받지도 못한 대표적인 숨겨진 6·25전쟁 영웅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날인 1950년 9월 14일 새벽 4시경에 개시된 ‘장사상륙작전’에 순진무구한 학도병들이다. ‘장사상륙작전’은 성공확률 ‘5000분의 1’로 보았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양동작전으로 아직은 어머니의 품이 그리운 학도병이 대부분 주축이 된 772명의 유격부대원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결사사수의 정신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후방교란작전을 일주일간 펼치면서 140여명이 전사하였고 대부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학도병 대부분도 군번이 부여되지 않은 비정규군으로 참전하여 개개인의 참전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제대로 된 예우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잊혀져가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인천상륙작전’의 큰 업적에 잊혀져가던 ‘장사상륙작전’의 숨은 학도병 영웅들을 재조명하고 역사적 성과를 되돌아보는 영화가 곧 개봉한다고 하니 그나마 피 흘리며 희생되었던 고귀하고 소중한 까까머리 소년들의 희생과 넋을 기리는 계기가 마련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6.25 전쟁이 시작된 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나는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던 전황에서 위태로운 전쟁의 판도를 뒤집고 성공확률이 거의 없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이름 모를 잊혀져가는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이러한 고귀한 희생이 완전히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군의 기록과 당시 함께 참전한 노병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와 숨은 영웅들에 합당한 국가적 예우와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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