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태풍 링링
아침을 열며-태풍 링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0 15:0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태풍 링링

태풍 링링이 온 나라를 들쑤셨다. 링링이 우리 동네에 도착해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던 그 시간에 하필 나는 알바로 택배 배송 일을 하느라 밖에 있어야만 했다. 링링의 포악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동네는 아주 오래된 마을이다. 이 동네에서만 20년을 훨씬 넘게 살았다. 내가 처음 이사왔을 때는 그다지 무성하지도 않던 나무들이 어느새 고목이 되어간다. 감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등, 각종 과일 나무도 많다. 특히 은행나무가 많다.

봄이 되고 살짝 더워질락 말락 하면 여기저기서 앵두가 빨갛게 열려 익는다. 새벽 조깅을 할 때 한주먹 따먹으면 엄청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앵두 먹기가 끝나갈 무렵이면 살구가 익어 저절로 땅에 떨어진다. 주워서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먹는 기분도 참 좋다. 이제 말복이 지나면서는 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벌써 연시를 맛보았다. 아직 떫고 단맛도 덜하지만 어쨌든 일찍이 연시를 먹는 것도 참 좋다.

태풍이 오면 나무가 가장 심하게 몸살을 겪는다. 가장 힘겨워하는 나무는 잎이 무거운 쥐똥편백이다. 잎이 무거운데다 잎에 쥐똥만한(실제론 쥐똥보다 훨씬 무겁고 크다) 열매를 달고 있으니 바람이 불면 괴롭다. 택배 배송을 하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맞은 편 건물에서 자라던 쥐똥 편백나무가 별 소리도 없이 가장 큰 가지가 부러져버리는 것이었다. 놀랄 새도 없이 일을 계속하는데 정말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은행나무에선 채 익지도 않은 풋은행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래도 나뭇잎들이야 그다지 위험하진 않다. 문제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3층이나 4층, 5층짜리 빌라의 지붕은 대개 시멘트 기와로 되어 있는데 지은 지 오래되다 보니 링링이 불어오자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 심지어는 5층 건물 옥상에서 밤에 불을 밝히던 서치라이터가 고정시멘트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내가 막 지나온 길에 떨어졌으니 뒤를 돌아보는데 소름이 돋았다.

오전에 시작됐던 링링은 오후가 되면서 우순해지는 듯했다. 웬걸, 한 반시간 후부터는 더욱 혹독하게 몰아쳤다. 내가 그렇게 쉽게 물러날 줄 알았어라던 링링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물러났다. 하룻밤 자고나자 언제 태풍이 왔냐 싶게 조용한 아침이 밝았다. 친구처럼 지내는 동네 청소하는 이와 아침에 마주쳤다. 동네 구석구석을 뒹구는 나뭇잎을 다 쓸어야 된다면 울상이었다. 편의점으로 싫다는 친구를 끌고 들어가 커피를 함께 마셨다.

링링은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고 지나갔다. 법무부장관에 대한 네거티브 태풍도 이제 잠잠해진 듯 하다. 참으로 혹독한 태풍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각종 표창장을 많이 받은 편이다. 나는 바로 위로 언니와 바로 아래 여동생이 있다. 나보다 자신을 잘챙기는 큰언니를 더 좋아한 나머지 동생은 표창장의 내 이름을 지우고 큰언니 이름을 쓰곤 했다. 동생은 일찍이 문서위조에 능했던 것. 아무튼 지나고 보면 표창장은 별무소득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