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가을 대추가 그냥 붉어질리 없다
시론-가을 대추가 그냥 붉어질리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5 15:5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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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
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가을 대추가 그냥 붉어질리 없다


가을에 수확하는 과실은 모두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태풍, 천둥, 번개를 이겨낸 결과물이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가을 대추가 그냥 붉어 질 리가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하략)

사람은 어떨까? 좋은 부모 만나서 아무런 고생 없이 크는 것이 좋을까? 아무런 어려움 없는 가운데 성장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될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GD(꼰대)소리 듣기 십상이지만 부모 잘 만나서 태풍, 천둥, 벼락 다 피하고 저절로 붉어진 대추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고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있다.

항일감정이 극에 달해있어 사례가 적절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일본 굴지의 기업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뽑은 인생성공 비결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는 성공의 비결로 가난과 허약체질, 무학을 꼽았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육체적으로 건강하지도 못했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이 세 가지 은혜(!)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데다 건강하지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다면 실패한 인생을 살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인데 이 사람은 ‘이것’ 때문에 성공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독하게 가난했기에 평생 근검절약 하면서 살았고 너무 병약했기 때문에 늘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아 94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며, 배운 것이 없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하여 겸손하게 처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프로무대에서 뛰고 있는 우리나라 골퍼 강성훈선수가 지난 5월에 PGA 2019 AT&T 바이런넬슨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PGA대회에 출전하여 첫 승을 하기까지 9년이 걸렸다. 강성훈 프로는 신장 173미터에 75킬로그램의 체중으로 골프선수로서는 다소 왜소한 체격이지만 159번의 도전 끝에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일종의 자격시험인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서 일찌감치 PGA 출전권을 확보했지만 첫해 10번 컷오프 됐고, 그 다음해에는 30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20회 컷오프되어 결국 2부 투어로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루어낸 성과라 우승의 감회가 남달랐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진한 감동을 받았다. 우승과 16억 원의 상금 안에 얼마나 많은 좌절과 땀방울이 맺혀 있겠는가?

지금 이 땅의 젊은이들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나중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면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고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도 없다.

옛 어르신들은 ‘초년고생은 양식 짊어지고 다니면서 한다’라고 했다. 노력 없이 성취한 것들은 절대 오래 가지 못한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만하면 그 성공이 오래갈 수가 없다. 초년에 입신양면 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도 젊은 시절에 반짝 성공했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져 연락마저 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은가.

가을 대추가 그냥 붉어 질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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