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태도
아침을 열며-태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5 16:15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태도

‘사진관 콤플렉스’라는 말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 하는 심리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얼굴에 관한, 특히 남의 눈에 비칠 자기의 얼굴에 관한 이런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보일까…” 아마 화장대 앞에 앉은 모든 여성들의 심중에도 이런 콤플렉스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좀 있었으면, 제대로 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런 ‘태도’가 더러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오면 이런 심리가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여기서는 ‘한국의 얼굴’이 어떻게 비칠까. 고울까 미울까… 곱게 비쳤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심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는 ‘텅쉰신원’(腾迅新闻)에 한국 모 여배우 관련 기사가 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참으로 씁쓸했다. “그 태도가 오만방자해 중국 스태프들이 시중을 들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준비한 호텔의 급이 떨어진다며 고급호텔로 바꿔달라고 요구를 하고, 한밤중에 특정 매니큐어를 사오라고 요구를 하고, 호텔에 전신거울이 없다며 마련하라고 요구를 하고, 더구나 마시는 에비앙 광천수로 목욕을 했다는 등등이었다. 이런 폭로가 줄을 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도 이런 게 문제가 되어 예정되었던 인기사극의 여주인공 자리를 중국배우로 교체 당했다고도 했다.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된 여주 교체의 이유는 “중국 전통사극의 주인공을 외국인이 연기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이유는 그녀의 오만한 태도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사에는, ‘그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단서도 달려 있었지만, 독자들은 이런 폭로를 사실대로 믿는 분위기였다. 100개가 넘는 댓글들을 대충 보니, 차마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우선 “바람이 없는데 풍랑이 일까”(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같은 점잔은 것부터, “빵쯔” 같은 비하적 욕설까지. “고구려로 돌아가고 중국에 오지 마라!”는 둥 거칠고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일부 중국인들의 국수적 오만방자함도 여기엔 표출돼 있다. 하지만 만일 실제로 이런 빌미를 제공했다면 그건 이 톱스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입장에선 중국이 자기를 그 자리에 올려준 너무나 고마운 고객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심중을 헤아리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히 문제다. 높이 올라갈수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인간사회다. 그게 외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기라는 것은 얻는 건 어려워도 잃는 건 한 순간이다. (최영미의 싯구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은 참으로 진리다.) 특히 외국에 나오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한국’의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기스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녀의 소속사는 그런 걸 가르치지 않았던 걸까?

우리는 지면과 화면에 등장하는 수많은 ‘저명인사’들을 알고 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그 태도도 정말 천차만별이다. 얼굴만 다른 게 아니다. 태도도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고 어떤 사람은 오만하다. 나는 수도 없이 말해왔지만, 여기엔 자기 자신에 대한 위치설정과 다른 사람에 대한 위치설정이 그 바탕에서 작용한다. 자기를 ‘어디’에 두고 상대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다. 오만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위’에다 두는 것이다. 겸손은 자기를 ‘아래’에다 두는 것이다. 오만은 무지와 연결되어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실상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가 ‘부도덕’ 혹은 ‘무례’의 시발점이다. 이른바 갑질의 출발점도 바로 거기다. 오만한 이들은 자기가 올라가는 줄 아는 그 길이 사실은 내려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누구도 잘난 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를 낮춤으로써 역으로 높이 받들어진다.

그녀의 관련기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노자의 저 명언이 떠올랐다. 여긴 중국이니까.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참된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고로 도에 가깝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