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조화로운 접점으로 지혜로운 경계를 지켜야 하리
도민칼럼-조화로운 접점으로 지혜로운 경계를 지켜야 하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5 16: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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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애/작가·진주 배영초 교사
안정애/작가·진주 배영초 교사-조화로운 접점으로 지혜로운 경계를 지켜야 하리

최근, 일기는 가을을 알리는 입추, 처서라는 절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폭염이라 할 정도의 31도를 오르내리는 여름 날씨다. 교실 안은 자기목소리를 모두 강하게 낸다. 에어컨을 켜라는 의견과 끄라는 의견이 상충한 경우를 접한다. “여러분 더운 사람과 덜 더운 사람은 누구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경계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질문을 하니 노루의 까만 눈동자들처럼 반짝이며 나를 응시한다 이미 조건은 ‘더워요’, 그러나 어디에다가 맞추어야 할까?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 다음은 다시 눈 떠 보기, 더운 사람 손 들어보기, 네에 잘 알았어요. 그리고 판단하여 에어컨의 온도조절 등 통제부분을 조정한다. 그리고 정리하여 전달하는 요점의 기술에 도달한다.

“좋아요, 더운 사람이 많구나! 친구들의 개인적인 신체기능과 활동 범주와 체질은 누구나 달라요, 그런데, 다수를 보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디에다가 경계선을 그어야 할까?” 한 박자 쉬고 반응을 들어본다. “어때요? 지금도 추워요?” 질문을 하고 전체를 살피니 1~2명이 춥다고 한다. “그래요, 어떻게 하지? 추워서” 먼저 공감하여 주고 그 다음 교실안의 형편과 처지를 알아듣기 좋게 친절하고도 따뜻한 어조로 접근한다. “선생님은 서울에 자녀들이 있어서 자주 고속버스를 이용해요, 그 버스 안에는 선생님 의사와 상관없이 에어컨이 작동해요, 당연히 추워서 선생님은 기사님께 요구도 못하고, 또 요구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승객 중에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수 있으니, 그러하여 선생님은 카디건을 백에 넣어 다녀요, 추운 친구도 선생님처럼 윗옷을 준비하여 다니면 참 좋겠다”라고 전달한다.

그러면 수긍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록 만6세 아이들의 집단이 요구하지만, 그 상황을 존중하고 수용하여 풀어가는 지혜가 진정으로 접근된다면 예민한 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도 그 불편을 다소 감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사노라면 분할과 짜임새를 잘 안배하여 정하듯, 소소한 일상에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 맞닥뜨려질 때도 건강한, 지혜로운 경계를 접근한다면 무척 편해질 것이다. 특히 이성과 감성을 소유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과 정신적이고 영적인 고차원적인 부분의 조화로움이 뒷받침되어야 원만한 삶을 지탱하여 갈 것이다. 특히, 인간은 개인 중심적인 일면이 너무나 강하다. 진화한 사회일수록 배움이 깊은 지식인이 많을수록 더욱 더 이기와 개인중심적 성향을 발견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을 도배하고 있는 어느 정치인의 사례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는 필자 역시 알게 모르게 실수와 오류를 범한 때가 자주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늘 아래 부족한 인간임을 시인하고 실수 잦고, 허물 많은 나약한 못난 죄성(罪性)과 오류(誤類)를 회개(悔改))하고 반성(反省)하는 삶은 천국(天國)갈 때까지 반복과 응징(應徵)으로 동반하여야 하는 큰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의 경계(境界)와 접점(接點)의 선에 현명한 판단과 좋은 관점의 눈이다. 물론 안목(眼目)을 가지려고 날마다 배우고 익히고 또 갈고 닦아가는 여정(旅程)에서 나를 관조하는 마음근육을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잘 알지도 못하는 허술한 자료들로 인하여 또 개인의 감정이 존중되어져야 한다는 요즘의 취향 저격과 인권 등을 운운함으로 인하여 자칫 전체가 흔들리는 오류를 주위에서 흔히 본다. 그 여파로 인하여 어려움을 자초하는 상황과 번복된 악순환은 계속된다.

단순히 풀어갈 문제도 오히려 엮임을 당하여 그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자가당착식의 난재(難在)로 빠져드는 경우도 본다.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수많은 에너지와 물량이 헛된 것으로 되어 손해를 보는 일임을 알면서도 반복으로 진행된다. 그 원인의 본질은 바로 소통의 부재이다. 현명하고 올바른 소통은 통합을 이끌어내는 단초이기도 한데, 애초부터 신뢰와 믿음의 밑거름이 없다보니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된다. 그 믿음은 신실함, 즉 사랑이 담겨진 진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진실은 성실과 정직이기도 하다. 결론에 가서는 사랑은 덕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일이지만, 오늘날 매스미디어(Mass Media)에서 언급하는 많은 갈등과 진창이 되어버린 사회이슈들의 한결같은 결과물의 시발점은 모두 사랑의 부재(不在)에서 나온 것이다. 국내의 핫(hot)한 모든 뉴스거리들도, 국제정세의 흐름도 그 해결할 큰 방점(傍點)은 바로 사랑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은 단단한 사랑의 기저에 조화로운 접점과 건강하고 지혜로운 경계를 지켜야만 진정한 평안함이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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