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간은 왜 불륜을 저지를까?
칼럼-인간은 왜 불륜을 저지를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16 18: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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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인간은 왜 불륜을 저지를까?


윤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지켜야 도리’ 불륜은 ‘인륜에 어긋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은 왜 불륜을 저지를까? 불륜의 원인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사실은 남편 또는 아내를 좋아하는데 어떤 오해가 원인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려는 사람, 혹은 단순히 남편 또는 아내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 단순한 현실도피 수단으로 새로운 이성을 찾는 사람 등,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모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도 불륜을 저지른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변호는 되지만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일까? 우리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결혼을 한 사람은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이외의 사람과 육체적 관계를 갖거나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결혼은 그런 것이다. 상대를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불륜을 인정해버리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거나 적어도 변질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불륜을 인정하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불륜을 저지르지 않으면 되는데, 남녀 사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세계든 소수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론을 말하려고 한다. 이성 간에 서로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플라톤에 대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데 소크라테스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우고 영원한 이상으로서의 ‘이데아’라는 개념을 주장한 이상주의자다. 이데아는 원래 사물의 모습이나 형태를 의미하는데, 이 경우의 모습과 형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눈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통 보이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의 세계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랑이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philia)’적 사랑은 우정·동포애이고, 그리스도가 주장하는 ‘아가페(agape)’적 사랑은 무상의 사랑·가족애이며, 그리고 플라톤이 주장하는 ‘에로스(eros)’다. 그 중 하나인 플라톤이 주장하는 사랑은 한마디로 그리움의 사랑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동경하는 순수한 사랑이다. 그런 점에서 순애(純愛)를 플라톤적인 사랑이라고 하여 플라토닉 러브라고 부른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향연’에서 소개된 이야기인데 옛날에 안드로규노스라는 괴물이 있었다. 얼굴이 둘, 팔과 다리가 각각 넷인 괴물이다. 그래서 뭐든지 할 수 있다. 안드로규노스는 그런 자신의 몸을 이용해 나쁜 짓만 하다가 어느 날 신의 노여움을 사서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벌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얼굴 하나, 팔 둘, 다리 둘인 사람 두 명이 생겨났는데 이 두 사람은 하나였던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서로를 원하게 되었고, 이것이 사랑하는 남녀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무리임을 알면서도 없는 부분을 욕구해 이상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사랑이 생겼다. 그것이 에로스다.

그러면 불륜은 어디에 해당될까? 불륜은 절대 양심의 가책을 씻어낼 수 없는 금단의 사랑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바로 에로스라 할 수 있다. 부부는 처음에는 서로에게 끌렸기 때문에 결혼까지 했을 것이다. 이것은 결혼의 본질에 관계하는 문제이다. 결혼은 서로를 존중하기 위하여 배우자에게 제약을 가하게 된 것이다. 그 제약은 마치 상대를 자신의 바구니 안에 가둬버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가정에 에로스가 있는 부부는 밖에서 에로스를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에로스는 육체적인 것, 성적인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이상으로 정신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마음의 유대이다. 미국의 어느 예언가는 ‘2020년이 지나면 결혼제도가 종말을 고하면서 가족의 가치도 상실될 것이며 이혼도 없어지게 되니 아이의 양육권 다툼도 없어지기 될 것이다’라고 했다. 간통죄가 없어지니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적인 ‘궁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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