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도서관
아침을 열며-도서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25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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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도서관

베이징 외곽의 빈촌이었다가 재개발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왕징’(望京). 한인타운으로 국내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곳이다. 서울 강남과도 비슷한 그곳 업무지구에 배 모양의 멋진 포스코빌딩이 있고 그 3층 한켠에 “왕징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이곳 관장님으로부터 ‘저자 특강’의 요청이 있어 그 내용협의차 사전 방문을 했다. 동네도 빌딩도 도서관도 관장님도 아주 인상이 좋았다. 때마침 하늘이 맑았던 탓이었을까? 무엇보다 그 도서관의 존재 자체가 반가웠다. 교민들을 위한 조그만 동네 서점으로 출발해 숱한 고비를 겪었는데 포스코의 배려로 공간을 확보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사장의 이해와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기여? 말로만 듣던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교민들과 조선족 직원들의 이용률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자원봉사자의 수만도 60명이 넘는다고 했다. 뭔가 흐뭇했다. 나는 일종의 재능기부로 기꺼이 그 특강을 수락했다. (고맙게도 그 특강은 성황리에 끝났다.)

관장님의 설명으로는, 중국에서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 카톡, 다음 등등 접속이 차단된 게 많아 교민들이 그 ‘문화적 욕구’의 빈 자리를 이곳에서 채우는 편이라고 했다. 독서모임, 저자강연 등 여러 행사도 자주 갖고, 그 독후감을 엄선해 책으로 펴낸 것이 이미 6권이 넘는다고 했다. 신선했다.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아주 어린 시절, 처음 가본 고향의 시립 도서관에서 뭔가 묵직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느끼며 숨을 죽인 채 <15소년 표류기>를 읽던 일, 중학교 때, 잠깐 ‘도서반’ 활동을 하면서 반원들끼리 넓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독후감을 발표하던 일, 고등학교 때, 도서실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홍루몽>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일, 대학교 때, 캠퍼스 한복판 언덕 위의 멋진 원형 도서관 건물에서 책을 잔뜩 쌓아놓고 졸업논문에 몰두하던 일, 유학시절, 육중한 분위기의 종합도서관에서 케케묵은 독일 원서들을 뒤적이던 일, 아이들이 어릴 때 도쿄의 동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던 일, 교수가 되어 에른스트 카시러의 철학이 함부르크 문화도서관에서 그 시사를 얻었다고 강의시간에 설명하던 일, 책도 짜장면처럼 연구실로 배달해주면 좋겠다고 도서관장에게 건의하던 일, 좋아하던 <닥터 지바고>에서 유리와 라라가 유리아틴의 도서관에서 재회하던 일과 역시 좋아하던 <러브 스토리>에서 올리버와 제니퍼가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는 것을 보며 멋진 배경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일,…도서관과 얽힌 장면들이 참 많았다. 그 모든 장면들의 배경에 도서관이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 도서관의 주인공이 ‘도서’ 즉 ‘책’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는 한다. 나의 경우, 삶 자체의 거의 절반이 책과 얽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수백권의 책을 사고 읽고, 그것으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취직을 하고 강의를 하고…그리고 하다 보니 30권에 가까운 책을 썼다. 나의 경우, 책이 없는 삶은 성립불가능인 것이다. 지금, 이곳 베이징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그리고 하루의 절반을 책을 ‘쓰며’ 지내고 있다. 60대 중반의 이 나이에도. 이건 아마 나의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의 대표님이다. 그는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다. 내 지인의 자녀 한 사람은 도서관의 사서로 인생의 본론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이, 그 책의 공간인 도서관이, 지금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시야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글이 삶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도 서점도 폐업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한다. 가장 가난한 직업이 시인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삐뽀삐뽀~ 위험 경고등을 켜지 않으면 안 된다. IT와 그 컨텐츠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시대가 그쪽으로 가는 게 필연이라고 해도, 그것이 책의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차지하는 만큼 책의 자리는 좁아진다. 책의 내용들이 밀려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는 빈약해진다. 그런데 애당초 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온갖 사유의 보고다. 언어의 화원이다. 그 자체가 각각 하나의 세계들이다.

그래서 책은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진정한 위대함이 책 속에 있다. 성서, 불경, 논어를 비롯한 사서삼경, 플라톤, 세익스피어, 괴테, 릴케, 톨스토이, 삼국지 서유기 수호지 홍루몽, …무궁무진의 언어들이 다 책 속에 있다. 내가 전공한 하이데거도 단 하나의 단어 ‘존재’에 관한 사유를 100권이 넘는 책에다 담았다. 그 무한의 사유세계, 그 재미난 이야기의 세계, 그 매력적인 시들의 세계… 그게 다 책인 것이다. 그리고…그 책들이 다 도서관에 모여 있다. 그래서 도서관이란 위대한 공간인 것이다. 국회의사당보다도 법정보다도 더 위대한 공간인 것이다. 그 도서관이 한 사회의 격을 보여준다.

그러니 한번쯤 점검해 보자. 지금 우리 사회의 도서관은 어떠한가? 그것은 어디에 얼마나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어떤 발걸음들이 그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가? 시험공부를 위한 발걸음 말고. 자기를 위한, 정신을 위한, 그리고 삶을 위한, 세상을 위한, 그런 발걸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베이징 왕징의 ‘작은 도서관’에, 그리고 거기로 향하는 모든 발걸음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베이징 왕징 포스코빌딩 3층, 거기에 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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