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나그네 설움
아침을열며-나그네 설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09.30 16:0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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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나그네 설움

‘나그네 설움’이란 가요가 있다. 고려성이 글을 짓고, 이재호가 작곡했으며, 백년설이 노래 불렀다.  태평레코드에서 1940년 2월에 음반이 발매되었다. 우리 가요계에 길이 남을 남인수, 이재호, 손목인 등은 진주 출신으로서 지역민의 사랑을 한껏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그들의 일제 말기 친일행적으로 말미암아 친일파로 지탄(指彈)받고 있다.

‘나그네 설움’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로 시작된다. 가사의 공간적 배경은 잘 알 수 없으나 1930년대부터 용정(도문)에 생긴 두만강 나루터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당시 두만강 나루터는 나라 잃고 부모형제 아내자식이 생이별하던 원한 맺힌 장소였기 때문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란 유명한 노래도 독립투사 문창학의 부인(당시30세)이 10여년 동안 찾아 헤맨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자 용정여관방에서 통곡하며 울었는데, 당시 유랑극단 생활을 하던 작곡가 이시우씨가 옆방에서 이 울음소리에 잠 못 이루다가 이튿날 사연을 듣고 작곡하였다고 전해진다. ‘나그네 설움’ 가사에 있는 ‘타관 땅’, ‘사나이’, ‘이국(異國)’, ‘지평선’ 등의 낱말에서 그 공간적 배경을 두만강과 만주벌판이라고 나름대로 상상해 보았다. 물론 검증자료는 없다. 순전히 필자만의 상상이다. ‘나그네 설움’은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민족의 상황을 나그네에 비유하여 피압박민족의 설움을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여 보면 이 모든 결과적 비애(悲哀)와 참극(慘劇)의 원인(原因)과 책임은 역시 정치지도자의 오판(誤判) 무애(無愛) 무능(無能) 탓으로 본다. 고종(高宗)과 그의 관료들의 무능과 오판 때문에 같은 겨레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독립투사로 추앙받고 어떤 사람은 친일파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사랑하는 가족은 갈가리 찢겨서 헤어지고, 민족은 처량하고 비참한 나그네 신세로 전락(顚落)되었다. 어떤 이들은 악질 친일 고문경찰로서 살았고, 어떤 사람들은 교활한 밀정으로 활동하였으며, 대개의 조선인들은 친일 부역을 해야만 하는 처량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 의사결정의 위치에 있었던 지도층은 국제 역학관계의 미묘하고 살벌한 움직임에 정확하게 판단하여 대응하지 못한 외교적 무능력의 극치를 보였다. 그 나라 그 시대의 정권을 잡은 정치지도자의 능력과 판단은 그만큼 심대하다.

이런 정치적 판단의 미숙과 오류가 그 나라 전체의 비극과 고통으로 이어지는 것은 과거의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치지도자를 잘 살펴보고 정치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에 대하여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선호와 증오, 낭만적인 추종과 까닭 없는 저항의식 등은 현재의 문제해결에도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도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치지도가 앞서서 통합보다 분열을 조장하고, 문제해결보다 문제를 불러일으키며, 포용보다 내침을 좋아하는 행태를 취하게 될 때 명약관화하게 그 나라와 그 사회는 늘 불안하고 앞날은 불투명해질 것이다.

이미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대량화 고속발사체에 성공한 북한은 남한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경고’의 표현을 당당하게 내지르고 있으며, 일본의 한국을 깔보는 조처들에 대하여 미리 알아서 방지하지도 못했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했으며, 미국의 방위비 증대에 대하여 미국조야의 움직임과 개별적 흐름을 파악하지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있을 만큼 미국 내 인맥관리가 사실상 전무하였음을 노출시키고 있으며, 중국은 말없이 소리없이 중국 내 우리 역사 흔적을 야금야금 지워 나가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북한의 손을 들면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항거할 수 없는 권력을 틀어쥔 견고한 집단들은 다수의 세력을 기고만장하게 과시하며 아무 힘없이 그저 눈치만 보며 벙어리냉가슴 앓듯 빈 가슴 쓸어내리고 있는 이들을 득의만만한 미소로 내리깔고 있다. 마치 1980년대 군부세력이 득세하자 아들뻘 되는 육군소위가 아버지뻘 되는 면장님을 안하무인으로 닦달하던 옛날의 모양새와 조금도 바를 바 없이 데자뷔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저 껍데기만 변했을 뿐 본질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의 완장만 다른 이들이 바꿔 찾을 뿐 힘없이 서러운 이들의 빈 밥그릇은 예나 지금이나 매 마찬가지다. 해방 후 다 함께 마을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불렀지만, 돌아와 마주 앉은 밥상은 해방 전과 다를 바 없이 ‘고깃국에 흰쌀밥’과 ‘맹물에 보리밥풀 서너알’이었다.

그저 왜정시대 불렸던 ‘나그네 설움’을 오늘도 남강변에서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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