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서초동을 가다
아침을 열며-서초동을 가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01 18: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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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서초동을 가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 모처럼 서울 나들이로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촛불집회가 있다기에 일찌거니 나서서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조금 일찍 출발했다. 지하철에서 얘기하는 걸 얼핏 엿들으니 서초역이 가까워질수록 거의 모두 서초동으로 가는 사람들인 듯했다. 그곳에 근접해오자 소탈하게 관련정보도 나누게 되었다. 누군가 방금 sns를 봤더니 서초역은 이미 막혔다고 전해 터미널 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좋은 자리 잡기는 글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각자 속마음은 벌써부터 행복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정권교체 촛불 때의 경험 이야기로 도란거리며 서초역 방면으로 걸어갔다.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합류해서 장마철 구름처럼 그곳으로 몰려갔다. 사람 마음은 매 한 가지라는 옛말을 생각하며 뭔가 올바르지 않음이 올바름을 호도하고 속이려고 하면 사람이라면 흑백을 명백하게 분별하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직 집회장소인 서초역은 보이지도 않은데 집회참가자들의 끝자락이 보였다. 다행히 서초동 누에(애벌레인가?)다리 밑이라 산으로 치면 봉우리라 메인 무대가 있는 아래가 멀리서나마 보였다. 세상에…정말이지 뭐라 말이 안 나오도록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 마음들이 진실을 원하는 한 마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뭉클했다. 진짜 몇년 전 거짓된 권력에 저항하던 추억이 상기되며 만감이 교차되었다.

금세 날이 어두워지자 초불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촛불도 많이 진화했다. 종이컵에 양초를 끼워 불을 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지를 넣지 않아도 반짝이는 형광 촛불이 대세였다. 그것은 아주 멀리서 보아도 더욱 반짝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남편은 어디선가 노란 피켓을 구해다 하나를 건네며 촛불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몇 년 전에 쓰다 둔 건전지를 넣는 촛불을 말하는 듯했다. 나는 못 챙겼다는 뜻으로 눈을 흘겼다.

사회자가 수시로 모이는 인원을 말해주었다. 초기엔 아직 시작 시간이 되기도 전인데 10만이 넘었다며 목표가 조기 달성됐다고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백만이 넘어가고부터는 더 이상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준비한 피켓도 진작 동이 났고 양초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회자는 모인 인원을 그냥 공식 백만으로 하자고 농반진반으로 말했다. 우리도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뭐 그게 중하냐며 웃었다.

아무리 우리 한 사람 안에는 한 우주가 들어 있다곤 하지만 큰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사소한 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힘이 모이면, 게다가 한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면 엄청난 힘이 되는 사실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집회의 대미를 장식하며 모두 ‘홀로 아리랑’ 노래를 떼창 했다. 중후하지만 다정하고도 수줍어하는 남자가 선창을 했다. 실로 장엄했다. 백만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실감하며 우린 모두 코를 훌쩍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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