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역할
아침을 열며-역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03 16:3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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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역할

외국에서 한국인끼리 만나 조금 가까워진 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꼭 ‘나라걱정’이 빠지지 않는다. 외국생활을 해본 사람은 다 알지만 그 ‘나라’가 곧 나의 이미지와 나의 삶의 본질적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그리고 이익과 손해가 모두 나라의 그것과 연동된다. 때로는 이것이, 때로는 저것이 활성화된다.

지금 이곳 베이징에서는? 마찬가지다. 다들 뭔가 바다 건너 조국에 대해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입을 모으는 것은, 정치와 교육과 언론이다.

정치가 과연 어떻기에? 정치에 종사하는 분들은 물론 각자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고민을 하며 동분서주하고 있겠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그만큼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정책도 입법도 국민들의 아쉬운 부분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파들 간의 대립-갈등-다툼이 너무 심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의 이념이 다른 것이야 당연한 기본이겠지만, 그 이견을 대화와 토론과 타협으로 풀기보다는 막말과 비난과 싸움이 우선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성숙한 국민들은 이제 그런 데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특권을 내려놓고 정파의 이익보다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 여야, 보혁이 머리를 맞대는 모습, 토론을 하는 모습, 손을 맞잡는 모습, 그런 모습을 국민들은 보고 싶은 것이다.

교육은?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모 교육관련 드라마가 그 붕괴를 상징한다. 한국 성장의 핵심동력이었던 교육이 이젠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생들이 일렬종대로 줄 세워지고 그 선두의 극소수만이 ‘스카이캐슬’같은 견고한 욕망의 성을 구축한다. 그 성에 입장을 거부당한 대다수는 이른바 ‘헬조선’에서 3포 5포 n포 다포세대가 되어간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한국교육은 ‘인간’은 물론 ‘인재’에 대해서도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베이징의 한 모임에서 어떤 분에게 ‘1000개의 퍼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000개의 조각을 갖는 퍼즐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조각일까? 가운데? 가장자리? 테두리? 아니다. 1000개 모두라는 것이다. 그 천개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그 퍼즐은 영원히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퍼즐 조각은 각각의 자리에서, 또 각각의 자리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모두가 하늘(스카이)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는 그 퍼즐이 맞춰지지 않는다. 사람의 소질과 능력은 다 다르다. 과일가게에서는 과일을 팔아야 하고 생선가게에서는 생선을 팔아야 한다. 옷가게에서 약을 팔아서는 안 되고 식당에서 재판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과일가게 생선가게 옷가게 약국…다 있어야만 하는 곳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이 기본중의 기본이 망각되고 있다. 직업의 편차, 소득의 편차를 줄이고 가치의 다양화, 다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보다 문제가 적다할 수 없는 중국이지만 대학교수와 택시기사의 소득수준이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기를 쓰고 무리해서 자기에게 맞지도 않는 교수의 길을 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의사 판검사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고 제대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학생들은 각자 자기 자리가 있는 퍼즐조각들이다. 국가라는 5000만개의 퍼즐도 그 어느 한 자리가 비어서는 완성품이 못 되는 것이다. 기업의 임원들이 사원들에 비해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것도 결국은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조세정의를 제대로 세운다면 어느 정도는 그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언론은? 신문·방송의 붓과 입이 예전 같지 않음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서슬 퍼런 정론도, 물론 없진 않지만, 참으로 드물다. 젊은 세대들은 그나마 그런 신문도 아예 읽지를 않고 TV도 아예 보지를 않는다. 요상하고 얄팍한 이른바 SNS가 언론을 대신한다. 거기엔 대부분 신변잡기가 가득하고 때로는 품격 없는 배설적 언어들도 난무한다. 과시 아니면 비난…생각있는 사람들은 아예 그 장을 경원하며 입을 닫는다. 점차 귀도 닫고 눈도 감는다. 인기있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그 지면과 화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잘 느끼지 못한다.

정치도 교육도 언론도 한 사회의 근간 중의 근간이다. 그게 흔들리면 나라의 기본도 흔들릴 수 있다. 경쟁국인 중국 일본을 넘어 진정한 선진국의 깃발을 휘날리기에는 삼성·LG와 BTS만으로는 역부족이다. 1000개의 퍼즐이 모두 각각 제자리를 찾아가 꽂혀야 한다. 거기서 모두가 각자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 정치와 교육과 언론의 제자리 찾기가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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