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진주성-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10 15:4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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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

윤치호(尹致昊 1865-1945) 정치가 호는 좌옹 충청도 출신 1881년 최연소자(17세)로 신사유람단에 끼어 일본에 다녀와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뒤에 미국에 유학 1895년 귀국 학부협판이 되고 이듬해(건양1년) 7월 서재필 이상재 이승만 등 독립협회 조직 1898년 2월에 회장이 되고 7월에 독립신문 사장을 겸임, 시정개혁 6개조를 왕께 상소 11월4일 황국 협회 측의 모함을 입어 피신 1899년 정부는 윤치호에게 함경도 덕원부윤으로 쫓겨 갔다. 1906년4월 장지연 윤효정 등 과대한 자강회를 조직 회장이 되어 활약 1910년 대한 기독교 청년회를 조직 한일합방후 데라우치(寺內)총독 암살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1912년 6년형을 받았다. 일제 말기에 귀족원 의원이 되었다. 해방 후 친일파로 몰림을 슬퍼하여 개성자택에서 자결했다.

‘작곡 안익태 작사 미상’의 애국가. 이 애국가 가사를 누가 썼는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윤치호설(說)과 안창호설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윤치호가 애국가 가사를 썼다는 자료가 새로 발굴되었다. 6·25전쟁 직후 미국에서 발간된 한국소개 영문 소책자가 윤치호(1865-1945)를 애국가 작사자로 밝힌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 태평양 출판사가 1954년 11월에 발간한 ‘한국 입문(Introduction Korea)’에 ‘애국가(Korean National Anthem)’악보를 싣고 작곡자를 안익태 작사자를 윤치호로 기록한 것. 이 책자는 한국 홍보용 자료로 제작된 것으로 이현표 전 주미 한국 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이 수집했다.

이승만 대통령 고문을 지낸 올리버 박사가 운영한 한국태평양출판사는 당시 한국 정부의 대미(對美) 홍보창구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 LA종우서관이 펴낸 ‘세계명작 가곡집’(1931년), 미국 적십자사가 펴낸 ‘National Anthems’(1952)등 윤치호를 작사자로 기록한 애국가 악보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윤치호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윤치호 설’옹호론자들은 윤치호는 1907년 애국가를 작사했고 1908년 발행한 ‘찬미가’를 통해 널리 보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창호 설’옹호론자들은 도산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했으며 도산이 평양에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앞장서 보급했다고 밝혀 왔다.

국사 편찬위원회는 1955년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11, 반대2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했다. 애국가는 우리나라 국가로 안익태 작곡 작사자는 미상으로 16소절로 간결하고도 장중함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 국가로 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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