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의원
진주성-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의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16 16: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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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의원

지청천(池靑天)(1888~1957)장군은 서울의 현재 청와대 구역에서 태어나 배재고를 졸업(1906년)하고 육군무관학교 졸업(1908년),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었으나 1919년 5월 일본군을 탈출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만주 봉천 유하현에서 신흥무관학교 교관 겸 교성대장으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고 1920년 대한독립군단 부사령관 1921년 고려 혁명군을 설립해 교장이 되었다. 1924년 김규식, 신숙 등과 국민위원회 군사위원이 되었고 1925년 정의부를 조직하여 군사위원장 겸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한국독립군을 조직. 총사령관이 되어 1932년 아성현 전투. 쌍성현 전투. 대전자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어 민족혁명당이 창당된 후 군사위원장이 되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및 국무위원이 되고 군무장을 겸하였다.

1940년 9월 17일 한국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었을 때 참모장에 이범석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 부관장에 황학수 등이 임명되었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고 1946년 이후 대동청년단장이 되고 이승만 정권 당시 초대 무임소 장관에 취임하였고 서울 성동구에서 제헌의원에 출마하여 당당하게 당선되어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 때 큰 공을 세우고 병역법을 만들 때 역시 공을 세운 분이다.

제 2대 민의원(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또 당선되어 큰 공적을 세운 분이다. 항일투쟁 당시 외가 성을 사용해 이청천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아들 지달수 선생은 부친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아성. 쌍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임시정부 특파공작대장으로 활동하고 광복군 주계로 복무하였다.

광복군 제 2지대 간부로 북경, 천진, 당산, 장가구, 서안 등지에서 항일전을 전개한 공적을 인정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상했다.

지청천 장군의 차녀 지복영 여사는 1940년 9월 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등과 여군 광복군이 되어 제 3지대 참모위원 겸 비서가 되어 활동하고 1944년 임시정부 임정자료과 선전과 회계검사원으로 복무하였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귀국해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중령으로 예편되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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