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청와대서 쌓은 인맥 경험으로 고향발전 위해 일하겠다”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 “청와대서 쌓은 인맥 경험으로 고향발전 위해 일하겠다”
  • 구경회기자
  • 승인 2019.10.16 17:54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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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출신 한국남동발전 상임이사 역임
30여년 정당·대한민국 발전 한길 인생
좌우명은 과유불급, 청년들에 열정 강조

지역발전연구소 열어 지역민 의견 청취
역사문화 탐방 선비길 프로그램 계획 등
사천·남해·하동 머무는 관광산업 추진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지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고향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지역민의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고향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청와대 춘추관장, 최상화(54)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12월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직을 끝으로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발전을 위한 신념 하나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고향 사천에 지역발전연구소를 열고 왕성하게 활동 중인 최상화 前 청와대 춘추관장을 만나봤다.


-먼저, 고향 분들에게 귀향인사부터 해주시죠
▲귀향은 4년전에 이미 했습니다.(웃음) 지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 최상화, 이렇게 지면을 빌어 인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저는 곤양면 중항리에서 태어나서 동명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동성초등학교로 전학을 했었습니다. 이후 사천중학교, 경남자영고등학교를 다닌 말그대로 사천 토박이입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직접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의 국론분열 상황과 관련하여 정당인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하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부디 정치권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산적한 민생문제와 경제활성화에 매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역민 여러분과 한마음으로 ‘법과 원칙이 바로 서는 대한민국’,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 최상화는 어떤 사람인지, 또 최상화에게 고향 사천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그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 역시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말썽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였습니다. 비록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 아픔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잘난 것도 없었지만 사람 귀한 줄은 알면서 살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최상화가 있기까지 억척스러우시면서도 겸손하셨던 부모님이 계셨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해드린 것 같은데, 두 분 생각만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땀 흘려 일하고 잘난척은 하지마라’는 부모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 속같은 곳입니다. 저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고,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와 친척분들이 여전히 생활하고 있는 삶의 터전입니다. 힘든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청와대 춘추관장이라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떤 곳인가요? 더군다나 박근혜정부의 초대 춘추관장이라면 그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춘추관은 흔히 말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청와대 내의 프레스센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곳에서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등 국정운영의 최종결정이 제일 먼저 발표되는 자리입니다. 특히 정권초기는 국정운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춘추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때 춘추관장을 맡으면서 정부부처는 물론이고 언론인과의 굳건한 인적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맥과 경험은 제게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맡아보던 관아인 춘추관·예문춘추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오늘날 자유언론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청와대 춘추관장을 마친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남동발전 상임감사를 선택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청와대 춘추관장을 역임하면서 국정운영에 깊숙하게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쌓은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고향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남동발전 상임감사를 맡게 된 것은 바로 우리지역 삼천포화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고, 본사도 진주혁신도시에 있어서 여러모로 고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인 임기를 넘기고 2년5개월 동안 상임감사를 맡아 오면서 공기업 본연의 사회적 공헌과 지역상생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전통시장 활성화와 취약계층 후원사업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동발전 상임감사를 맡으면서 느낀점과 주요 성과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력산업 현장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취임하자마자 전국 6개 사업소를 방문하여 현장 설비운영과 현안 사항에 대해 우선 점검하였습니다. 발전설비도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우고, 현장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또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하여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고 있는 우리 직원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전력인이자 회사의 임원으로서 전력산업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후 지적과 질책보다는 사전에 불합리한 사항과 리스크를 점검하는 예방 문화를 강조하였고, 실제로 감사조직을 예방중심의 조직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직원들의 노력으로 청렴도 우수등급 달성과 함께 2017년에는 한국감사인대회에서 ‘청렴윤리부문 최우수기관상 및 내부감사혁신상’을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도 남동발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있고, 부족한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신 남동발전 임직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명함을 보면 ‘자유한국당 상임전국위원 최상화’라고 되어있습니다. 상임전국위원의 역할과 위상은 어떤 것인가요?
▲자유한국당에는 당무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상임전국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당 소속 상임위원장, 도당위원장 등 100명 이내로 정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저는 중앙위원회 대표 자격으로 황교안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임명 되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청운의 꿈을 안고 홀로 상경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을 텐데요. 어떻습니까?
▲맨몸으로 상경해서 첫 정당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들처럼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집안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성실함과 두둑한 배짱으로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그 결과 주위로부터 ‘최상화는 의리가 있고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2004년 한나라당이 최대 위기였던 순간에 당시 총무부장으로 손수 뛰어다니면서 천막당사를 지었습니다. 2007년 대선 경선때에는 친박계로 찍혀서 사직서를 내어 반려받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우직한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처럼 저는 30년 넘은 세월을 자유한국당과 대한민국을 위해 우직하게 일해왔습니다. 당내에서는 총무부장, 조직부국장, 사무총장 보좌역, 대변인 행정실장, 대표최고위원 보좌역, 직능국장, 환경노동 전문위원,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국회정책연구위원(1급)을 역임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취임식 실무추진단장을 맡게 되면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춘추관장에 이르게 됐습니다.

-정치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쓰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나갈 계획입니까?
▲사람 한 명이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자만이 정치에서 독(毒)으로 작용하여 실패하는 것을 숱하게 보았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절충하는 것이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민들의 정당한 요구사항에 대하여 지자체 공무원분들과 함께 해법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중앙정부에 관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정당, 국회, 청와대에서 국정 경험을 많이 쌓았고, 다양한 분야에 강력한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에 미력하나마 해결방안을 마련한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소중한 자산을 고향을 위해 제대로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천의 숙원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이신가요?
▲통상적으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경우, 주민 편의를 위해 시·군에서 사업을 발굴하여 경남도를 통해 중앙정부로 제출하게 되면 각 부처별로 국회예산심의를 통해 확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국가의 예산은 정해져 있고 지자체마다 요구는 많다보니 관철되기가 매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경남도에서 빠질 수도 있고, 정부부처에서 빠질 수도 있고, 국회에서 빠질 수도 있는 것이 국가예산입니다. 제가 국회와 정부에 있으면서 지자체 관계자들과 현안사업에 대한 고민을 나눌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케이블카 유치, 체육시설 유치, 버스터미널 이전사업, 남일대 해수욕장 정비사업, 재래시장 개선사업, 수해지역 숙원사업, 의료시설등 이러한 여러 사업들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여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습니까?
▲한분이라도 더 만나 뵙고 한 말씀이라도 더 들으려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지금은 재래시장과 다양한 행사 위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접촉면을 늘려 각 지역별, 직업별, 연령별 등의 다양한 주요현안들에 대해 토의를 갖고 필요에 따라서는 공약화 하겠습니다. 사천성당 옆에 지역발전연구소를 오픈한 이유도 바로 지역민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빠르고 누구나 참여가 쉬운 SNS망을 구축하여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은 젊은층 뿐만아니라 중장년층의 사이버커뮤니케이션이 아주 활발합니다. 좋은 의견 주시면 충분히 반영하고, 성심성의껏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천·남해·하동의 청사진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인근의 진주나 여수·순천의 변방이 아니라 이들 도시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사천·남해·하동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말은 싸워서 이기자는 것이 아니라 인근도시의 장점과 인프라를 잘 활용하자는 것입니다. 일례로 엑스포 이후 늘어난 여수의 관광객들, 진주혁신도시 공공기관을 찾는 외지인들, 광양산업단지와 교류하는 바이어와 기업인들을 우리 사천·남해·하동으로 유인하고 우리 지역에서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당일치기 방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먹고(음식), 자고(숙박), 타고(교통) 머물러야만 지역경제가 살아납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산과 강,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다 고속도로, 항만, 공항을 갖춘 육해공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입니다. 미래 황금산업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의 최적격지가 바로 사천·남해·하동입니다. 그리고 항공산업의 메카로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것 또한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대한민국 50년을 책임질 항공우주산업의 기반이 조성되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기술이전 등의 중소기업과의 연계성을 더욱 확장하고 국가사업 유치와 예산확보에도 애쓰겠습니다. 특히 우리지역 학생들의 안정적인 취업을 위해 항공관련 교육기관 설립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비길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이전에 공약으로도 제시했는데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사천선비길 프로그램은 제가 속해있는 ‘사천역사문화연구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지역의 많은 분들과 논의하면서 방향을 잡았습니다. 원래 선비길은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역사·문화 산책길로서 정신적인 가치를 보다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선비길은 기존의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등 여느 트레킹 코스와는 달리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당일코스부터 3개월 일정의 트레킹 코스 등 구성하고 중간중간 쉼터와 게스트하우스, 학생들을 위한 유스호스텔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사천·남해·하동을 잇는 하나의 역사문화관광상품이 선비길입니다.

-평소 중시하는 좌우명은 무엇인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과욕을 경계하자’ 입니다. 특히 공직자는 크고 작은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늘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 ‘계영배(戒盈杯)’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계영배’는 잔에 술을 7할 이상 가득 채우면 술이 모두 빠져버리는 술잔으로 과욕을 하지말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요즘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다. 우리 지역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넓게 보고 원대한 꿈을 품으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꿈을 꾸는 자만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항상 높은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실행할 때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과감하게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가진다면, 언젠가 그 꿈의 크기만큼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각자의 꿈을 실현하여 각 분야의 핵심인재로서 가족과 회사, 나아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최상화 감사위원은
곤양에서 태어나 사천동성초등학교, 사천중학교, 사천농고(현 자영고) 경남과학기술대 학사,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를 거쳐 정당 생활을 시작하였고 정당의 주요당직과 국회정책 연구위원(1급), 청와대 춘추관장등을 맡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영에 직접 참여했다. 이후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를 거쳐 현재는 자유한국당 상임전국위원을 맡고 있다. 고향발전을 위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포부로 사천, 남해, 하동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 가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구경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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