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끝이 좋으면 다 좋다?
시론-끝이 좋으면 다 좋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20 15:3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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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끝이 좋으면 다 좋다?

서양 속언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이 있다. 경과 과정이 어떤 모양이든 결과가 훌륭하면 사소한 잘잘못이야 덮어둘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수사(修辭)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빠뜨리고 있는데, 그것은 처음이 좋지 않고서 끝이 잘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곧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 온전하게 의복을 입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양문화권의 사고 형태에 비해 외형적 질서와 성과에 더 치중하는 서양 사람들이 자주 사용할 만한 어투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우리 근대사를 돌아볼 때,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한 가지는 대한민국의 건국 초기를 장식한 그 허다한 지도자들 가운데 중국의 쑨원(孫文)처럼 이념과 체제와 시대를 넘어서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쑨원의 경우는 중국과 대만에서 동시에 국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 시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도자로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구 선생을 들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 출신의 성가(聲價)에 걸맞도록 노회한 정략을 구사한 이승만은 손수 타이핑한 서신 공세로 미국 정가의 대 한반도 여론을 움직일 만큼 정치적 ‘방법’에 능란하였다. 그 방법이 진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보다 앞서게 되어 그는 결국 비참한 끝을 보았다. 반면에 김구는 우국충정에 있어 민족적 사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이를 현실적인 정치의 마당으로 전화하는 ‘방법’을 찾을 줄 몰랐다. 그래서 어느 문필가는 그의 암살을 두고 ‘방법이 없는 정치가의 비극’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새롭게 내걸고 출발하던 그 당대에 우리가 김구의 애국심과 이승만의 정치력을 함께 겸전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이 산술의 공식처럼 일목요연하게 제시될 수는 없을 터이지만 여러 가지 사례에 기댄 추론은 가능하다. 미국의 초기 역사를 참고해 보면, 워싱턴이나 제퍼슨과 같은 훌륭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신봉자들이 포진하고 있었기에, 짧은 기간 안에 독립을 쟁취하고 세계 제일의 강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세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격동하는 우리 근대 역사에는 진실로 인물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올바른 ‘방법’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훌륭한 인물에 의해 선도되는 좋은 출발, 이것이 어찌 개별적인 세상사나 과거의 교훈에만 적용되는 좋은 결과의 준거이랴! 정말 존경받는 지도자는 지극한 정성과 참고 이해하는 끈기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의 첫 단추를 정확하게 채워주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루 말로 다 못하는 심정적 곤고함과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곧 하늘의 그물은 크고 엉성해 보이지만 결코 그물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과 같이 역사와 운명의 법칙 안에 있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가 지도자이기에 겪어야 하는 일이고 또 지도자가 되기로 작정했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에 해당한다.

5000년 역사를 가진 한민족의 나라, 우리 조국은 남북으로 동서로 갈라져서 70여 년을 단절의 고통 속에 살았다. 그러다가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결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숱한 정치적 곡절이 있어도 이렇게까지 그 양상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국론 분열’이 아니라고 말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그 ‘첫 단추’를 생각한다. 그 정치 지도자들의 초심을 다시 점검해야 할 형국이다. 내 편만 감싸 안고 의견이 다른 상대방은 잘못이라고 간주하는 진영논리가 이 갈라치기의 첫 패착이다. 이것부터 고쳐야 옳을 것이다. 우리 모두 상대방이 틀렸다가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초보 산술을 다시 학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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