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1)
진주성-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23 17:4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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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1)

통영지역에서 3·1운동 때 앞장선 기생 이소선, 정막래 등이 있고 남편을 따라 항일투쟁을 전개한 박덕실, 정금자. 진해지역은 김조이, 마산은 김명시 여장군이 있고 마산지역에서는 김두석, 최봉선, 고성군 출신은 이금복 하동지역에는 김계정, 제영순, 조복금 등이 있고 3남매가 항일투사로 활약한 조정래, 조복애, 조옥래 등이 있다.

필자가 자료를 찾아 정부포상이 추서된 분은 이금복, 박덕실, 정금자, 조옥래 오빠 조정래 등이다.

이금복 여사는 고성군 하일면 공립보통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1928년 박대영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삼천포독서회 사건으로 도피중이었다.

시동생 박대홍으로부터 <별의 나라>, <집단>등의 사상 서적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

1934년 8월 부산 영도에 소재한 조선법랑철기(주)에 여공으로 취업했다.

부산에서 정충조, 박보홍, 이춘근 등을 만나 적색노동조합을 다시 조직할 때 앞장서게 된다.

1936년 2월 8일자 <조선중앙일보>에 보면 조선공산당 재건으로 백여 명이 검거되어 13명이 예심종결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 정충조, 박보홍, 이춘근, 이금복 등이 관련 인물로 적시되었다.

적색노조운동을 전개할 때 ‘여공을 위하여’라는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하다 일경에 발각되어 피체되었다.
1935년 3월 26일 부산지법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삼천포지역으로 이주한 이금복 여사는 삼천포야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실시하였고 적색농민조합 활동에 동참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1939년 8월 30일 부산지법 진주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석방되었다.

적색노동 활동가들은 1. 임금인상 2. 8시간 노동제 3. 남녀노소 민족의 구별없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4, 해고 반대 5. 매주 1일씩 유급 휴가 6. 단체권 확립 7. 출판 집회 자유 8.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했다.

농촌에서는 소작인 투쟁, 고리대 착취, 토지와 식량 탈취 등을 반대하며 친일파와 친일기업에 대한 투쟁을 실시하고 야학교 학생들을 사상적으로 훈육했다.

필자가 공적비건립추진위원장이 되어 고성군 항일면 송천리 474번지에 공적비를 세우고 비문을 짓고 세웠다.
2018년 8월 고성군에서는 이금복 여사를 이 달의 인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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