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명소
아침을 열며-명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27 14:2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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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명소

지난 노동절 연휴 때다. 한주일 내내였다. 베이징에서 사귄 지인 두 가족과 함께 꾸베이쉐이전(故北水镇)과 스마타이장성(司马台长城)을 다녀왔다. ‘베이징에 왔으니 장성은 한번 봐야 할 텐데’ 했더니 K가 기획을 해준 것이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니 너무너무 좋은 곳이었다. 익히 듣고 있었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중국’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베이징 동북의 교외에 있는 고북수진은 3000년도 더된 역사를 가진 마을이라는데 인근 고북구에 비해서도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누군가의 기획으로 마을을 싹 밀어버리고 지금과 같은 중국식 전통 수향마을을 건설한 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명소로 거듭났다고 한다. 마을 바로 뒤의 스마타이 장성과 연결한 것도 아마 성공비결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두 명소를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으니까. 약 2조원이 투입되었다던가? 방문객의 수를 보아하니 아마 조만간 그 건설비를 회수하고도 남을 것이다. 중국 각 지방의 다양한 전통식 건축물들, 베네치아를 능가하는 운치 있는 수로들, 다리들, 뱃놀이, 다양한 먹거리들, 술도가, 염색방, 심지어 온천, 경극을 비롯한 볼거리들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었다. 규모도 하루로는 다 못 다닐 만큼 작지 않았다. 게다가 그 배경으로 험준한 뒷산의 만리장성이 둘러져 있고, 더욱이 압권인 것은 화려한 야경.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소였다.

얼마나 방문객이 많은지 원래 1시간여 거리인 그곳까지 무려 5시간이 걸렸다. 톨게이트에서 입구 주차장까지만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장성 케이블카도 거의 1시간이나 줄을 섰다. 이 숫자들이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베이징에 돌아오니 거의 밤 2시였다. 평일이면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연휴였기에 오히려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좀, 아니 많이, 부러웠다. 그런 곳이 수도 인근에 있다는 게.

그 다음날 바이두에 올라온 한 기사를 보니, 고북수진 뿐만 아니라, 항주의 서호, 낙양, 서안, 소림사, 등등 중국 전역이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인구대국임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며칠이 지나 뒤풀이 겸 식사나 하자며 다시 모여 한인타운 ‘왕징’근처의 ‘치쥬빠’(798)라는 곳으로 갔다. 원래 독일인 주거지의 창고거리였던 이곳에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여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이젠 세계적인 예술타운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인기가 뉴욕의 소호 (Soho) 1) 못지않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 전체가 젊은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여기저기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들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하나의 명소였다.

그 풍경이 어쩔 수 없이 떠나온 서울과 겹쳐졌다. 왠지 용인의 민속촌과 홍대앞이 연상되었다. 그 스케일의 차이 때문에 비교하기가 싫어졌다. 좀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 초라함. 기획의 부재가 아쉬웠다. 나는 여러 차례 여기저기서 서라벌과 사비성의 재건을 외쳐왔다. 원래와 같을 필요는 전혀 없다. 짝퉁이라도 상관없다. 천년이 지나면 새로 만든 그것이 진짜가 될 테니까. 창덕궁 앞에 조선 상가를 건설하자고도 외쳐왔다. 최소한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 외국손님들에게 권할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사업과 관련된 문화예산이 그렇게 쓰여지는 건 좋은 일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기획, 그런 스케일, 그런 안목은 중국을 참고할만하다고 느꼈다.

밤 11시쯤 고북수진을 떠나 베이징시내로 향할 때, 뒤돌아보니 마을 전체와 장성의 불빛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시간에도 마을로 진입하는 차량들은 북새통이었다. 일행 중 한분이 농담처럼 한 마디 했다. “얘네 들은 밤낮으로 아예 돈을 쓸어담는구먼” 우리 인문학자들에겐 낯선 단어인 ‘관광산업’이라는 단어가 순간 뇌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일자리’라는 단어도 스쳐갔다. 문화와 경제는 그렇게 얽혀 있다. 정부에도 관련 부처가 있을 텐데 그들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고북수진과 만리장성을 통째로 서울 인근에 옮겨다 놓고 싶었다. 치쥬빠 거리도.



1)‘South of Houston’, 즉 '휴스턴가 남쪽'부터 그랜드 스트리트에 이르는 장방형의 화랑 밀집지역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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