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2)
진주성-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30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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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지역 여성 항일투사(2)

진주출신 여성 항일투사 박덕실(1901~1971)여사는 진주 3‧1운동 지도자 한규상(1896~1971)의 부인이다.

한규상 선생과 박덕실 여사는 3‧1운동 당시 약혼자 사이로 1919년 3월 18일 낮 12시 진주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시내 5곳에서 동시에 시위하기로 결의, 결행할 때 이들 부부는 중앙시장 인근에서 <독립선언서>와 교유문을 배포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 일경에 빼앗기고 3만 군중을 도청으로 이끌 때 함께하고 한규상 선생은 결국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진주와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를 때 박덕실 여사가 사식을 넣어 주는 등 활동했다.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독립운동 단체 혈성단을 자택에서 조직해 광림학교에 설치했다.

홍수원, 강우석, 김정도, 여병섭 등이 단원이었고 단원 30명 중에 여성은 박보교, 박현구, 박덕실 3명뿐이었다.

혈성단은 10여 년간 발각되지 않고 활동하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사건으로 임시정부 문서가 일경에 압수되자 단체의 실체가 국내 경찰에 알려져 대대적 검거가 시작되었다.

박덕실 선생은 대한적십자사 진주지회 회원. 1919년 11월 대한애국부인회 진주지회장으로 활동하다 제령 제 7호 위반으로 대구복심법원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박덕실 선생은 1920년 12월 결혼이후 광림학교 교사, 시원여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박봉을 나누어 남편 의학공부를 위해 송금하고 계속해서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임시정부를 위해 활동하는 박만선, 김두현 등을 지원하고 숙소를 제공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1923년 10월 합천군 삼가면에 삼가여자야학을 설립하고 1928년에는 신간회 자매단체인 근우회 진주지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진주보통학교내 여자부를 독립시키기 위해 모임을 개최하였고 김성실. 김상달 등과 함께 실행위원으로 활동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박덕실 여사는 진주교회 권사로 봉사하다 1971년 3월 1일 별세했다.

슬하에 6녀를 두었으니 수정, 금주, 원주, 남주, 옥정, 순정 등이며 3명이 미국 의사로 활동하였고 셋째 딸 원주는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매그너스요양병원 의사로 근무 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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