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서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아침을열며-서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0.31 16:31
  •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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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서민들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라”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F. 케네디가 한 말이다. 그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슬로건으로 미국 국민의 헌신적 협력을 호소하면서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3년 11월 22일 유세지인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암살자의 흉탄에 사망하였다.

그가 이런 슬로건으로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한 것은 혁명적 ‘신좌파(New left)’ 세력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그 역시 젊은 대통령으로서 상당히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으나 당시 등장한 급진주의자들의 과격한 사상과 행동으로 인하여 국가 전체를 통합하여야 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와 기능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급진 과격행동주의자들은 미국인의 전통적인 ‘청교도 윤리’를 까부수면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문화’를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시키려 하였다. 이들은 기존의 인식체계에 저항하며 흑인의 민권운동, 흑인의 민족주의 운동을 펼쳐 나갔고,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를 대안으로 내놓으며, ‘성 혁명’과 ‘마약 혁명’으로써 세속주의(secularism)의 문화를 확산시키려 하였다. 이런 문화를 대항문화(counterculture)라 일컫는다. 동시에 이들은 미국 사회에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사회주의 이념을 확산시켜 나갔다. 과격한 방법으로 미국사회에 혁명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 붐(baby boom)’ 세대에 속하는 부유한 백인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전후의 번영기 속에서 유복한 환경과 부모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자란 운이 좋은 세대이고, 대부분이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복한 생활을 하는 중상류층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늘어난 대학생 수효로 취업난과 장래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이들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 세력의 대변자로 행세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에 이들에게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한다(live right, think left)’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강남 좌파’란 개념도 이런 유에 해당된다하겠다. 하지만 이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도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건국 이래 오래도록 통합의 긍지 속에서 살아온 미국 사회를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갈라 대립시켰다. 이윽고 미국 사회는 분열적 혼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급진좌파들의 개인적 성향은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여 공동체인 국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있게 행동하는 ‘나(I)’가 아니라, 개개인의 이기적 쾌락에 탐닉하는 ‘나에게 주의(meism)’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인류사회 기초로서의 구체적인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오로지 개인의 욕망을 실체라 주장하는 ‘이기주의(egoism)’를 뒤섞어 짬뽕으로 만들어 가지런한 생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헌신과 희생, 봉사와 사명감, 인류애의 실천이라는 ‘신세계(new world)’로서의 영감을 드보르작 등 전 세계 젊은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에게 부어 주었던 미국은 그리하여 세계 일등국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2차대전에도 참여하고 한국전쟁에도 기꺼이 참여하였지만 이들의 등장으로 국가방향은 극심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전후의 불안한 풍요 속에서 성장한 이 급진세대들은 그들의 선배나 부모들과 사상과 정신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사상으로는 ‘사회정의’를 확고하게 지향하고 있으나 개인적 행동 양상은 ‘시장의 이익’이었다. 이들의 입술은 ‘공정한 사회’를 외치지만 이들의 선택은 남들이 갖지 못한 정보를 활용한 ‘사적 이익 추구’였다. 그 흐름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가 2차대전 직후 태어난 1946년생인 트럼프다.

현재 우리나라에 대한 위기는 트럼프로 상징되는 미국 내 기성세대들 역시 미국 사회의 한 주류를 커다랗게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의 선배들처럼 ‘한국’을 ‘도와주어야 할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미국의 최일선 방위선’ 아니라‘, ‘한국은 미국을 뜯어 먹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지금까지 가져왔던 미국, 일본, 북한, 그리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가까운 인식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다시 검토하여야 한다고 본다. 누가 말하였던가. 우리의 ‘집단적 사고’와 ‘소망적 사고’를 극히 조심하여야 한다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국제정세와 현실문제를 판단하여 대응하여야 한다고. 우리의 ‘애정과 호혜’를 북한은 ‘비굴한 나약’으로 오판할 수 있으며, 우리의 ‘짝사랑과 선호’를 미국은 ‘교활한 갈취’라고 비하할 수 있고, 우리의 ‘피해의식과 거룩한 적개심’을 일본은 진지한 반성보다는 떼어 버려야 할 부스럼딱지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나라 경제가 어렵다고들 말들은 많은데 정보와 정책을 생산하는 국회의원들의 재산은 그동안 얼마만큼 증가하였고, 늘 고급정보에 가까이하는 공직자들의 재산증가는 그 얼마이며, ‘철의 삼각’ 안에 포진한 이익집단들은 또 그 얼마나 좋은 기회를 누리며 그들의 재산을 늘렸을까? 이래저래 죽는 놈은 조조 군사라고, 없이 사는 애꿎은 ‘나’만 죽을 지경이다.
어떻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 서민들은 자기의 삶을 위하여, 나라의 앞날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여, 서민들에게 있어서 국가기구와 조직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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