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아들과 함께한 4박5일
시론-아들과 함께한 4박5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03 15:3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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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
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아들과 함께한 4박5일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 온전하게 4박5일 동안 함께 있어 본 기억이 없다. 돌아보면 한창 어릴 때도 함께 한 시간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바쁜 업무 때문에 거의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귀가하는 것이 일상사였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아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아들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어색해 했다. “침묵은 금이다”라고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침묵은 “금이 아니고 간극”이다.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할 말을 다하면 감정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묵시적 합의에 의한 침묵이다.

현재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몇 군데 인턴을 거쳐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취업은 선택의 문제였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별다른 스펙이 없어도 취업걱정은 안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동안 대학의 입학정원은 꾸준히 늘어난 반면 졸업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십대의 절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문과대 졸업생의 경우는 취업이 더더욱 어려워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당사자다. 대학만 졸업하면 뭔가 탈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취업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 웬만한 스펙 가지고는 서류심사를 통과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혹시라도 몇 번 도전하다가 안 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좌절감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대학의 낭만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 따고 스펙 쌓은 죄 밖에 없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대들보와 기둥만 가지고는 안 된다. 서까래도 필요하고 자갈도 필요하고 모래도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들보와 기둥만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이 문제다. 실제 지역의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는데 정작 일할 사람은 없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해서 처음에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하자는 제안을 했더니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백두산 트레킹을 제안했더니 어렵게 가겠다고 하였다. 16명의 단체관광객은 대부분 가족단위 여행객 이였고 친구끼리 온 팀도 있었다. 부자간에 여행을 온 경우는 우리 밖에 없어서 내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은 부자관계가 좋다고 부러워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제 곧 취업하면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고 결혼하고 나면 더더욱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진정한 내막은 아들과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10여 년 전에 백두산에 다녀왔고 안개 속에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천지의 위용을 경험했기 때문에 구지 백두산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무엇보다 무슨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4박5일의 일정을 같이하면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단체관광이다 보니 밤늦은 시간에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정리하고 자기에 바빠 막상 대화를 할 시간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다만 항상 철부지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본인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심전심으로 내 마음도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그리고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어려운 취업의 문이 열린다면 그건 이번 여행의 보너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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