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포용
아침을 열며-포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03 15: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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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포용

베이징에 와서 알게 돼 친해진 L과 한 모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한 중국인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천안문 인근에 있는 그 친구 집이 무려 150칸이 넘는 고택이라고 했다. 그런데 좀 사연이 있었다. 그 중국인 친구의 부친은 모택동과 장개석의 국공내전 때 국민당 쪽 군대의 장군이었는데 국민당이 패망하고 대만으로 건너갈 때, 홀로 대륙에 남아 있다가 결국 공산당군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엄청난 거부였는데 그 재산도 모조리 몰수당했다고 한다. 그랬는데 후진타오 집권 때, 무슨 정치적 계산이었는지 그 후손들의 정치적 ‘금족’이 풀리고 그 재산도 ‘반환’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대받은 그 집이 바로 그 집이라 했다. 물론 당시 이른바 양안관계의 회복을 위한 정치적 고려가 당연히 작용한 것이겠지만, 그는 중국인들에게 우리와는 다른 통 큰 포용력이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중국 전문가인 또 다른 지인 K는 그 말에 동조하면서 다른 일례로 이른바 ‘양회’(전국인민대표자대회(전인회)와 전국정치협상대회)의 한축인 ‘정협’을 언급했다. 그 정협이란 것은 법률기구도 아니고, 그 어떤 법적 권한이 부여된 것도 아니지만 그 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는 공산당과 정부에 넘겨져 정책에 반영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정협에는 공산당 집권 이전부터 대립적으로 활동하던 이른바 ‘민주당’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헌법상 공산당 독재가 명기돼 있고 다른 정치세력의 집권은 원천 차단돼 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그 정적들을 그런 식으로 ‘포용’하고 있다고 K는 설명했다.

그는 또 모택동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모가 주도한 이른바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문화를 처참할 정도로 파괴한 중대과오였다. 지금도 그것을 경험한 세대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중국교수도 그것을 끔찍한 것으로 회고했었다. 그런데도 천안문에는 지금도 그 모주석의 거대 초상화가 떡하니 걸려 있다. “이런 현상 흥미롭지 않나요?” 하고 K는 웃으며 반문했다. 모두가 그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이룩한 중국통일과 이른바 인민해방, 그리고 한족 중심 정부수립의 공로를 함께 인정한다는 것이다. 등소평에 의한 이른바 ‘공7과3’의 정리 이후 누구도 더 이상 그것을 왈가왈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중국식 포용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런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은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몇몇 사건 때문이었다. 강원도 춘천의 모 문학공원에 있던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그의 친일 전력을 이유로 철거돼 땅에 파묻힌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기도 부천에서도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모두가 그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자기를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너무너무 숭고한 것으로 돋보이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죄 없는 자는 돌을 던지라’고 한 예수의 말도 그런 취지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한국문학에 대한 미당의 공이 그 얼마인가. 그런데 우리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입장이 다른, 아니 진영이 다른 ‘저쪽’은 절대악으로 치부하고 철저하게 배제한다. 무관용, 무포용. 이건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좌파가 집권하면 이승만과 박정희가 매도당하고, 우파가 집권하면 김대중과 노무현이 매도당한다. 왜 우리는 그들의 공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공7과3, 아니 공2과8이더라도, 그 공을 보고 인정해주는 것이 그 과를 보고 매도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정치가에게 절대선과 절대악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그 ‘과’를 덮어버리자는 건 절대 아니다. 그건 절대 잊지 말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 공에도 눈을 감고, 더욱이 과와 함께 땅에 묻어버리는 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자리에 모인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패거리가 아닌, ‘저쪽’ 진영의 누군가를 살벌하게 매도하며 그 흔적에 붉은 페인트를 칠하고 땅에 묻고 때려 부수고 하는 일부의 행태가 ‘한국’의 이미지로 바깥에 비치지 않았으면 하고 다들 우려했다. 저 천안문에는 오늘도 거대한 모택동의 초상화가 참극이 있었던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일단 평온하다. 모의 표정도 천안문 광장도. 그걸 보면, 그런 게 국가의 품격과도 관련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물론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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