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빨간 도깨비
도민칼럼-빨간 도깨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05 16:1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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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빨간 도깨비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처음으로 선거참관인을 자청해서 해봤다. 하동고등학교 실내체육관으로 배정을 받아 가보니 각 정당별 추천을 받은 이들이 나와 선거하러 나온 이들을 말 그대로 보고 있었다. 혹시 선거를 하는 사이 불법적인 일은 없을까? 투표함이 잘 운반되어야 하는데? 나는 다소 긴장했지만 참관인 네 사람 중 나만 처음이고 다른 분들은 다들 경험이 있어 그런지 적당히 쉬며 하라고 과자나 사탕도 건네며 안면이 있는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편히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시간, 참관인은 투표소 밖을 원칙적으로 벗어날 수 없어 선관위에서 준비한 김밥과 사발면을 돌아가며 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오전 시간 서로 안면을 익혀서인지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큰 비밀 하나를 알려주듯이 한 말씀을 하셨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온 문재인 그 사람, 북에서 온 사람이잖아요. 그 사람 되면 북한에 다 퍼줄 텐데 뽑으면 큰일 나. 빨갱이잖아”,“누가 그래요?”, “선거 전단지에 있잖아요. 못 봤어요?”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지금 선거참관인으로 와서 그런 소리 하시면 안 되지 않느냐 눈을 치켜떴다. 옆에 앉은 다른 이가 내게 계속 우기려는 아주머니에게 눈을 꿈쩍거리며 말리는 통에 그쯤에서 멈췄다. 부모가 그 유명한 흥남부두 철수작전 때 자유민주주의를 찾아 왔어도 부모의 고향이 함경남도 흥남이라는 것이 북에서 온 사람으로 회자되고 급기야 빨갱이도 되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그저 모르고 무식해서 가짜 뉴스에 속아 저런다고만 해야 하는 건지 답답했다. 그래도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그런 허튼소리는 사라졌나 싶었는데 요즘 장터에 나가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참기름을 짜는 아주머니의 입에서도 그런 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많이 성숙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회나 있는 진보 보수 논쟁, 세대 간의 논쟁은 있을 수 있어도 ‘빨갱이’라는 말은 어느 케케묵은 구시대의 망령인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가소로운 말인지, 왜 우리는 자꾸 앞으로 한발 나아가다가도 뒤로 두발 물러나는 어리석음을 갖는지, 문맹률이 거의 전무한 나라의 현실이 어찌 이런지, 하기야! 국난 시 나라의 운명을 거머쥐어야 하는 장수였다는 사람 입에서 인권센터 소장이 군의 기강을 저해한다며 케케묵다 못해 인권 억압의 상징인 ‘삼청교육대’가 튀어나오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지난 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중간발표에서 기막힌 일이 나왔다. 당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경빈이는 맥박이 뛰었지만 헬기로 20분이면 가는 거리를 4시간 41분 만에 그것도 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했단다. 의료원격조정으로 헬기이송명령을 받으면 살 수도 있는 아이를 그놈의 의전 때문에 해경청장이 타고 갔다니! 국민의 생명보다 높으신 분의 이동이 더 급한 나라였나?

자식을 가진 어미로 아픈 심정을 가지고 지난 토요일 광화문 광장을 가봤다. 이 세상 어느 슬픔보다도 자식 잃은 슬픔이 제일 크기에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광화문 북측 광장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빨갱이! 빨갱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그 소리를 외치며 세월호 부모들에게 악을 쓰고 있었다. ‘빨갱이’라는 말은 주문 같았다. 그 주문을 외면 요술방망이처럼 꼴 보기 싫은 건 다 사라지고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다는 듯이 외치고 있었다. 1950년대 망령이 도깨비가 되어 사람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누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을 악에 바친 사람들로 만들어 자식을 잃은 이들과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들에게까지 욕설을 하게 하는 것일까?

아주 가까운 이들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국가를 걱정하는 것이리라! 자본주의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대세고 자유민주주의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어 바뀔 수 없다. 다만 돈이 우선인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가려는 노력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면 ‘빨갱이’인가? 가을, 그 부끄러운 주문이 저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면 우리는 봄을 맞이할 텐데! 부끄럽지 않고 따뜻한 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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