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겨울나기 걱정
도민칼럼-겨울나기 걱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06 14:4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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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 시인·작가-겨울나기 걱정

세월이 쏜살같다. 강물처럼 흐른다느니, 이런 말들은 말쟁이들이나 글쟁이들뿐이 아니고 누구나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렇다. 요즘, 세월을 묵은 사람들에게는 하루가 눈 깜짝할 새고, 한 달은 퍼떡 가고, 1년은 금방 지나가버린다고 한다.

어느덧 더위가 물러가고 올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은근히 걱정스럽다.

내가 태어나 자라던 고향마을은 섬진강을 찾아 흘러 내려가는 샛강이 있었다. 어릴 때 개구 쟁이던 때, 여름에는 집 앞 강물에 풍덩 뛰어들어 해가지도록 물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잊었었다. 그렇지만 하루 24시간 물속에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물 밖에서가 문제였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쌓이다 보니 개구쟁이 때처럼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물속에라도 뛰어 들고 싶을 때가 많지만 주변 환경이 허락하질 않았다. 요즘처럼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더위를 치루기는 고역이었다.

개구쟁이였던 그때는 폭설이 내려도 친구들과 뛰어다니다 보면 추운 줄은 전혀 몰랐었다. 강물이 얼면 썰매타기를 했고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놀았던 즐거운 추억만 있다. 추워서 힘들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

하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넘도록 항상 여름나기를 걱정했던 나에게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오장육부의 장기들이 노쇠 되고 지체를 따르는 팔과 다리에 노쇠현상으로 오십 견과 신경통이 번갈아 찾아왔다. 해마다 겨울이면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발 시림이다. 두꺼운 면양말에 털신을 신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이라도 쓰려하면 양쪽 발은 시리다 못해 아려오니 고통스럽다. 대여섯 살 개구쟁이 때 양말도 신지 않고 강에 나가 썰매를 타고 놀다 집에 돌아와 이불 밑에 발을 집어넣으면 얼었던 발이 녹을 때 아려 오는 것과 같다. 찾아다닌 병원마다 척추협착으로 대퇴부를 관통하는 신경을 눌러서라고 이구동성이다.

60을 지나면서부터 추위가 점점 견디기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환갑을 맞을 때만 해도 여름나기나, 겨울나기가 힘들기로는 반반이었다. 친구들과 말잔치라도 벌이게 되면 항상 여름나기가 걱정이라고 말했었다. 환갑이 지날 무렵부터는 따뜻한 방안에 앉아 있어도 발이 시리고 무릎이 시리다. 겨울나기가 훨씬 힘들다는 말로 바꿔 하게 되었다.

옛날 부모님은 화로에 잉걸숯불을 담아 방 가운데 놓고 쬐면서도 어깨에서 찬바람이 인다. 무릎이 시리다고 겨울만 되면 입에 달고 살았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흉내를 내며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겨울만 되면 온몸에서 찬바람이 일고 있다. 가스보일러가 돌아가고 난방장치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방안에서 두꺼운 내복에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글을 쓰고 있으면 추위가 엄습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나기는 고통스럽다.

물론 여름나기도 수월타는 말은 아니다. 더 힘들기로 말한다면 겨울 보내기가 여름보다 지루하고 힘들다는 말이다. 개구쟁이 때부터 중년이 넘도록 겨울나기는 문제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곤 하던 내가, 더운 여름나기가 힘들다고 걱정하던 내가, 어느 땐가부터 겨울나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변덕쟁이가 되고 말았다.

요즘은 밖에 나갈 때 두꺼운 내복과 오리털 파카를 입는다. 차안에는 찬바람이 들어올 틈새구멍 하나 없고 히터가 작동되니 추위 걱정은 없다. 거리를 걸을 때가 문제다. 씽씽 불어대는 시베리아 찬바람이 내 얼굴을 강타하면 전에는 흐르지 않던 눈물을 닦아내기도 고역이다. 이처럼 매년 겨울 보내기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루했는지 모른다.

다람쥐나 뱀과 개구리가 추운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고 따뜻한 봄에 일어나는 것처럼 겨우 내 보일러를 틀어 놓고 두꺼운 이불 밑에서만 뒹굴 수는 없지 않은가.

작년과 올여름 유래 없는 폭염에 모두 힘들었다고 이구동성이었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올 겨울나기가 걱정된다. 세상 떠나신 부모님 나이가 되고 보니 어깨와 무릎이 시리다. 온 몸에서 찬바람이 일고 있다는 말씀을 요즘 내가 그대로 실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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